말하지 않으면, 말하지 못한다

by 응시하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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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얼마 전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머릿속이 잠시 멍해졌다. 나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는 마음껏 풀어낼 수 있지만, 죽음을 앞둔 이에게 마지막으로 건넬 말에 대해선 말문이 막혔다. 그 상대가 이미 몇 차례 고비를 넘기는 동안, 나 혼자 조용히 깊이 사무친 통곡을 삼키기도 했다. 지금껏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낯설고 이상한, 그런 슬픔의 소리가 올라온 건 처음이었다. 그 슬픔이 흐르는 시간 동안 이따금 마음속 감정을 덜어내기도 했지만, 지금도 눈앞의 상대를 보며 끝을 예감할 때면 고개를 돌리게 된다. 애써 머릿속을 비우고, 두꺼운 손을 잡고서, 흐릿한 눈동자를 보며,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한 마디는 '손이 참 크시네요'였다. 특별한 의미를 담지 않은 말이기에, 상대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면서도, 눈물을 삼키며 건넬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네고픈 진심은 따로 있지만, 그 말로부터 터진 슬픔 속에선 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할게 뻔하기에, 일그러진 모습만 보일 바엔, 가벼운 말 한마디가 지금의 나에겐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진심도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라기보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이고, 내가 슬픔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단지 내 생각일 테니, 눈앞의 가장 슬픈 사람에게 다른 무거운 감정이나 생각을 더 싣고 싶지 않다. 어쩌면 정작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현실은 흘러가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보다 더 깊이 슬픈 이들이 슬퍼할 시간을 마련하고, 조용한 위로를 건네야 하니, 그들의 감정과 내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이런 현실을 예견하고서 상대에게 종종 시간을 내어, 내가 보기 좋은 풍경을 보여줬다. 그게 전부였다. 지금도 내가 할 말은 늦지 않았지만, 실은 이미 늦은 말이고, 지금의 말을 다른 방식으로 전했더라도, 늘 부족할 뿐이다.


지금 내 곁에는, 앞으로의 내 곁에도, 나의 마지막을 지켜볼 사람은 없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 지금은 그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끝은 슬픔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그 슬픔이 현실로 다가올수록,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 이제부터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전할 생각이다. 그저 좋아하는 사랑만은 아니다.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운 마음, 삶의 한 페이지를 함께 해줘서 고마운 마음을 담은 사랑이다. 지금 죽음을 앞둔 상대가 건강했을 때는 부끄러운 마음에 좋아한다는 말조차 전하지 못했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은 무심히 전했지만, 나는 티를 내지 않으니 아마 몰랐을 것이다. 내가 전한 마음을 상대가 알았더라도,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은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그러니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외에 다른 말이 무엇이 더 필요할까.


나의 마지막에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 혼자 끌끌 웃으면서 양손을 마주 잡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때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미 살아생전에 큰 사랑을 받기도 했으니, 전에 사랑받았으니까 되었다고 여기지 않을까. 곧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그 사람의 죽음 너머로 여러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무거운 감정이지만, 나는 이런 생각과 감정을 안고서도 또 즐겁게 살아갈 수 있으니 이런 생각 또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만 품고 있으면 되는, 나만 품고 싶은 생각이다.


2025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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