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여름

사랑이 내리쬐니 토마토가 되었다.

by 레아


무더운 여름이다. 나는 초록색을 좋아하지만 이렇게나 푸르른 여름은 사양이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있어도 나뭇잎 하나 흔들리는 소리 없는 날씨다.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에 더 서 있다가는 벌겋게 익은 토마토가 될 지경이다. 땀이 주르륵 흐르지만 닦을 힘도 없이 그냥 서 있다. 이마에서 관자놀이를 타고 뺨을 지나 턱으로 흐른다. 턱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냈지만 역시 큰 효과는 없었다. 한 손으로 그늘을 만들며 미간을 찌푸리던 그때 멀리서 버스가 왔다.


"안녕하세요."


버스를 타도 더운 건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 동네 버스는 창문이 열린 채로 달렸다. 동네 어른들이 에어컨을 켜놔도 창문을 열어버리고 바람을 쐬기 때문인지, 오래된 버스라 에어컨이 작동을 안 하는 건지 알 수는 없다.


맨 뒤에서 두 번째 오른쪽 자리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자리다. 시골에는 응당 지정석이라는 게 있으니까 내심 이 자리에 지분이 있다 생각하며 내 자리에 앉아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미지근한 바람을 느꼈다. 초록색 냄새가 나는 바람이다. 그러다 다음 정거장에 멈출 때면 열어진 창문을 통해 엔진 열기가 훅 올라오지만 괜찮다. 다시 출발하면 금세 바람이 불어 시원해지니까. 시골은 모든 정거장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한다. 정거장마다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창문에 기대어서 눈을 감는다. 버스 진동이 불편하게 느껴지다가도 생각에 빠지면 그 진동도 익숙해진다.


아지랑이 같은 거다. 눈을 감아도 자꾸 생각나고 떠오르는 게, 자꾸만 일렁이는 게. 뜨거운 여름날 햇빛을 가득 받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땅의 마음을 공감하는 순간이다. 사랑이 내리쬐니 속수무책으로 일렁인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이 더운 버스 안에서도 웃음이 나는 거구나.


비포장도로를 달려 덜컹이는 버스에서도, 에어컨이 안 나와 창문을 열고 자연 바람을 쐬야 하는 이 순간에도 너를 떠올리니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구나. 마음이 뜨거운데 어쩌지. 얼굴이 토마토 빛이 된 것이 느껴져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그런 나를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내 창 밖 풍경이 달라졌다. 초록색이 가득하던 곳에서 낮은 건물이 보이는 곳까지 달렸다. 초록색 냄새도 옅어지는 걸 보면 거의 다 왔나 보다.


아마도 너는 정류장에 앉아 기다리고 있겠지. 내가 버스를 기다렸을 때처럼 너도 땀을 흘리며 햇빛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널 보러 가는 길도 즐겁지만, 날 기다리는 일도 즐거울 테니 너도 조금은 익은 토마토가 되어있기를 바랐다. 토마토 빛을 띠는 건 꼭 날씨 때문은 아닐 거라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어내며 하차벨을 눌렀다.


버스 문이 열리자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