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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16. 2024

카페 일등석 집착남

(feat. 자기 성찰)

자주 가는 카페에는 선호하는 자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자리에 대한 집착이 좀 있는 편이다. 예민한 성격이라서 그렇다.


어느 날 카페에 글을 쓰러 갔다. 그날따라 앉을만한 자리가 없었다. 원래 이 시간에 종종 있는 단골 분들과 테이크아웃해서 출근하시려는 분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 같았다. 창가 쪽에 빈자리가 있었지만, 햇볕이 너무 뜨겁고 눈이 부셨다. 창문에는 블라인드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 비즈니스석에 앉은 분이 음료를 받고 떠났다.


비즈니스 석이라고 해서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카페의 좌석등급을 나눴다.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창가와 출입구의 정 반대편 구석에 있다. 이곳은 일등석이다. 벽을 등지고 앉으면 오른편도 벽이어서 왼편에 가방을 놓고 이어폰을 끼면 완벽한 나만의 영역이 만들어진다. 집중할 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커피를 받으러 가기도 가깝다. 글을 쓰다가 가끔 고개를 들면, 창밖의 하늘을 보거나,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도 있어서 좋다.


그다음 등급인 비즈니스석은 일등석의 옆옆 자리이다. 바로 옆자리는 일등석이 자꾸 신경 쓰여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반대쪽 끝은 창가라서 햇볕의 문제가 있으니 옆옆 자리가 두 번째로 좋은 자리가 된다. 양 옆이 뚫려 있어서 신경이 쓰일 때가 있긴 해도,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사람들이 없을 때가 많으니 괜찮다. 처음에만 어떻게든 집중하면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자리마저 없으면, 마지노선 자리를 확인한다. 좁은 공간에 있는 높은 스툴에 앉는 자리이다. 예전에 딱 한번 앉은 적이 있었는데, 벽을 보고 앉게 되는 좁은 자리여서 뭔가 독서실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는 게 공부하거나 일하는 기분이면 싫을 것 같아서 좀처럼 앉지 않으려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외의 다른 자리들은 앉아서 대화나누기에는 불편하지 않지만, 혼자서 뭘 하기에는 집중하기 힘들다.


커피를 가지고 비즈니스석에 무사히 착석했다. 듣고 있는 음악이 뭔지도 모를 만큼 집중해서 글을 썼다. 그런데 문득 일등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게 되었다. 아기 엄마가 앉아 있었다. 이분은 원래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다가 가시는 분이다. 그 아기와 몇 번 눈을 마주친 적이 있어서 내적 친밀감이 있다. 남의 아기라 그런지 이뻐 보였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이 엄마는 왜 오늘따라 내 자리에 앉으셨을까? 아, 하긴 내 자리는 아니다. 당연히 앉을 수 있는 것이지만, 오늘따라 왜 그랬을까? 어느새 일등석에 정신이 빼앗겨 버린 나를 발견했다.


왜 이러는 걸까? 거기 못 앉으면 포기하든지, 아니면 다른 카페로 가든지. 방법은 여러 가지 아닐까? 글의 시작 부분에서 말했지만, 나는 자리에 대한 집착이 있다. 이건 약간의 강박과 고집인 것 같다. 우선 내 마음에 쏙 드는 자리를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자리를 한번 만나면 계속 그 자리를 고집하게 된다. 다른 장소에 갈 필요는 없다. 그 자리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니까 바꿀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 자리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누군가 그 자리를 선점하고 있으면 화가 난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은 상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뭘까? 한마디로 불안 때문이다. 그 불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더 분석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저 “아 내가 불안해서 그랬구나.” 정도로 받아들여도 괜찮은 것 같다. 불안하니까 선호하는 자리에 앉아서 통제감을 갖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잘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러니 해법은 단순하다. 선호하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여기기 시작하는 것, 어떤 다른 주제보다는 내 마음에 오롯이 집중한 글을 쓰는 것, 마음을 분석해 보고 따져보고 거짓말을 찾아보는 것, 혼자서 하기 힘든 부분은 도움을 받는 것. 그러다 보면 점차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그때 적절한 타이밍에 일등석에 앉은 애기 엄마가 집에 가려고 준비하는 기척이 느껴진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짐을 다 챙겼다. 일등석으로 자리를 옮기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후련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뭐 어쩌겠는가? 우선은 글을 쓰는 게 더 중요하다. 당분간은 카페 자리 집착남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도 일등석에 앉아서 글을 쓰고 싶다.



+ 추가내용


글을 다 올리고 나서 AI와 대화해보니, 이 정도면 집착은 아니고 그냥 자리에 애착이 있는 정도라고 한다. 삶을 크게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스스로에 대해 좀 과하게 판단한 듯 하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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