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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17. 2024

걷기와 쓰기

저수지 주변의 나무는 빨리 자란다. 조금만 뿌리를 내려도 쉽게 물을 얻는다. 선납지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작은 나무가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겼다. 어쩌면 몇 년 안에 선납지의 명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봄에는 형형색색 꽃들이 피고 진다. 노을이 질 때, 노란 꽃들이 만발한 선납지 주변을 걷는 것은 참 이국적인 느낌이다. 여름이 되면 풀들이 있는 힘껏 자란다. 곧 제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들 있는 산책로에 뱀이 나오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깎고 담아서 버리는 수고를 한 다음, 선납지는 미용실에 다녀온 듯 산뜻해진다. 잘 꾸며진 정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고 풀과 나무들이 자라는 동안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걷기와 쓰기를 시작했다는 것이 최근의 가장 큰 변화다. 몇 주 동안 꾸준히 하는 걸 보면 이제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누구나 해야지, 하면 좋지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가만히만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핑계를 생각해 낸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잘 설득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그 좋은 설득력도 다 필요 없어지는 때가 온다. 몸이 파업을 선언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는데 가슴 쪽 근육이 아파서 숨을 쉬기 불편했다.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보다 확실한 동기 부여가 없었다.


마음도 그런 식으로 여러 번 파업을 선언했던 적이 있다. 사는 것은 짜증 나서 싫고, 죽는 것은 무서워서 싫다고 했다. 사실 그때마다 글을 썼으면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을 것 같다. 평소에 운동을 하면 건강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왜 그리 고집이 센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만 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글쓰기 모임을 생각했다. 생각을 하고 참여할 때까지 몇 주가 흘렀지만, 어찌 되었든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에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했으니까, 이것 또한 확실한 동기부여였다.


걷기 시작하니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온몸의 근육이 아팠다. 몇 년 동안 움직일 일이 없었던 잔근육들이 놀랬던 거다. 오래 걸으려면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서 처음 며칠은 몸이 휘청휘청하기도 했다. 걷기가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발목만이 여전히 몸이 무겁다며 푸념을 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몸이 많이 괜찮아진 편이다. 가슴 쪽이 아팠던 건 둘째 날부터 괜찮아졌다. 체중도 조금 빠지고, 피부 트러블도 많이 사라졌다. 아마 여름이 지나기 전에 걷기에 완전히 적응이 끝나지 않을까 싶다. 그때쯤 달리기에 천천히 도전해보려고 한다. 그때쯤 내 몸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글을 쓰는 것도 제법 달라진 것 같다. 처음에는 머릿속을 비우고 잡념을 털어내기 바빴는데, 요즘에는 걸으면서 그 작업이 자연스럽게 된다. 집중력이 점점 늘어난다. 무엇보다도 처음 글을 진지하게 쓰려고 했을 때는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르고 쓸 때가 많았다. 다 쓰고 나면 그때서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거였나 하곤 했다. 최근에는 나만의 주제를 하나씩 발견해 가고 있다. 조만간 그 주제들을 모아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우선은 쓰고 싶은 말부터 원 없이 다 쓰는 것이 목표다. 마치 마술사 입에서 카드가 끝없이 나오다가 짠 하고 남은 카드를 털어버리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다 쏟아내고 싶다. 그러면 그 후에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 같다.


걷고 쓰면서 몸과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은 따로 뗄 수 없는 것이다. 몸을 바꾸려고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면 마음도 달라지게 된다. 마음을 바꾸려고 글을 쓰다 보면 걷고 싶어 진다.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 시너지가 있다. 계절이 더 바뀌고, 선납지 나무가 명물이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더 달라져 있을까? 그때도 걷기와 쓰기를 멈추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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