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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23. 2024

커피의 맛

주의 :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에 의존해서 서술했기 때문에 사실관계나 정보의 측면에서 틀린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청년이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깐 카페의 분위기를 살펴보다 계산대 앞으로 다가갔다.

“혹시 예멘 모카 마타리 되나요? 메뉴에 있다는 거 블로그에서 보고 왔거든요.”

감싸 쥐듯 들고 있는 Nikon DSLR의 본체 뒤로 그의 손목에는 스트랩이 휘감겨 있었다. 싸이월드에 올릴 감성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었다. 직원에게 말하면서도 그는 그녀의 머리 위에 걸려있는 넓은 메뉴판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마치 거기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찾아내려는 듯이.


“아… 제가 알기로는… 그게 안 되는 걸로… 잠깐만요! 저희 사장님께 여쭤 볼게요.”

직원은 갑자기 뒤편 구석으로 향했다. 작은 문이 열리자 외부로 향하는 길과 나선형 계단이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드러났다. 사장님이 위층에 머물고 있는지 직원은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텅텅 울리는 소리가 임시로 만든 철제계단의 느낌이었다. 잠시 후 직원이 급하게 내려왔다. 청년은 괜히 사람들을 귀찮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 주눅이 들기도 했다.

“음, 그게 안되면 그냥 케냐 AA로 내려주세요. 익숙한 신맛이 땡기기도 하네요.”

“아, 케냐요? 아, 네. 그… 러면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결제 먼저 도와드릴게요!”


그런데 청년이 카드를 내밀기도 전에 직원은 뒤로 돌아섰다. 조리대 위에 있는 것들을 급하게 옆으로 치우고, 아래쪽에서 원두를 새로 꺼냈다. 좀 더 신선한 원두일 거라고 청년은 예상했다. 직원은 그 원두를 수동 그라인더로 갈기 시작했다.

“와, 여기는 다 수동으로 갈아서 내리시나 봐요?”

청년은 감탄한 듯 물었다.

“네?? 아, 네. 그건 아니고… 오셔가지고… 그..”

직원은 어쩔 줄 몰라하며 원두를 갈아냈다. 청년은 직원이 왜 그리 수줍어하는지 의아했다.

‘혹시, 나한테 반했나? 내가 그럴 얼굴이 아닌데…’


그때 계단이 탕탕 울리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사장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 안녕하세요. 제가 이 카페 사장입니다. 바리스타 원두영입니다.”

사장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자기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다가 방금 마치고 바로 내려왔다는 뉘앙스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청년은 인사를 받았지만, 그 뒤로 말을 잇지는 않았다. 사장에게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타리 찾으셨다고요? 그게 요즘 원두 퀄리티가 균일하지 않아서… 저희가 들여놓지를 못했네요. 요즘 예멘에 내전 터진 거 아시잖아요? 저희가 원두 받는 곳에서도 수급 자체가 안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마침 직원이 케냐를 다 내린 듯했다. 조심스럽게 잔에 담아 청년에게 내미려는데, 사장이 부드러운 손길로 빼앗다시피 그 커피를 가져갔다. 스푼으로 조금 떠서 향과 맛을 보았다. 청년에게 내어놓기 전에 자신이 먼저 확인하려 한 듯했다.

“음, 나쁘지 않네요. 실례했습니다.”

사장은 커피를 정중히 청년에게 내밀었다.

“마타리 찾으셨다면서, 케냐 말고 다른 걸 드셔보시지…?”

“아, 아니요. 아는 카페 사장님이 마타리를 추천해 주셔서 마셔보려고 했던 건데, 다들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혹시나 하고 여쭤본 거였어요. 제가 커피를 잘 아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이것저것 유명한 것 위주로 마셔보는 중이에요.”

“그러시군요.”

청년은 커피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한 모금을 머금으면서 그의 시선은 오른쪽을 향해 있었다. 맛을 음미할 때 그의 습관인 듯했다.

“……”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그 청년의 첫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판사의 판결문을 기다리는 것 같은 태도였다. 반면 청년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만 우물거렸다.

“음… 이게… 음… 신맛이.. 다른 곳보다 좀 더 신맛이 강하네요. 로스팅을 좀 덜 하시는 편이세요?”

“저희 원두… 는 로스팅해 주는 분이 따로 있어요.”

“아 그렇구나.”


청년이 다른 말을 하지 않자, 사장은 갑자기 다른 원두를 꺼냈다. 청년은 사장이 자동 그라인더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청년이 놀라며 물었다.

“와, 원두마다 수동인지 자동인지 분쇄하는 게 다른가 봐요?”

“네? 아… 그런 건 아닙니다. 편의상 기계로 가는 거고.. 맛에는 큰 차이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그렇군요.”

직원이 다른 손님을 받는 사이에, 사장은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재빠르게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심지어 그가 쓴 오렌지색안경에 트레이닝 점퍼도 그가 전문가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듯했다. 온도계로 온도도 확인하지 않고 주저 없이 포트를 돌리는 그의 모습에서 큰 신뢰감이 느껴졌다.

“보통 92도로 내리지 않나요?”

“음. 그렇게 딱 온도를 정하시는 분도 계시죠. 제가 알기로는 88도에서 96도 사이면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온도에 따라서 맛도 미묘하게 다르고 내리는 것도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저는 워낙 매일 내리니까… 빵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만 봐도 잘 되는지 아닌지가 보이거든요.”

사장은 너도 그 정도는 알 것 아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춤추듯 포트를 돌리며 커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어느 정도 지켜보던 사장은 마치 지금이 정확한 타이밍이라는 듯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커피를 잔에 담아 청년에게 내밀었다. 청년은 사장의 호의에 감사할 뿐이었다.

‘커피 마시러 왔는데, 무슨 시음회를 하고 있네. 대박이다! 이따가 싸이에 올려야지.’

청년은 커피를 받아 향을 맡으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 사장은 그 청년의 미소를 보며 알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오, 이거 고소하고, 좀 약간 탄맛?”

“그렇죠. 좀 어떠세요?”

“맛있네요. 이건 무슨 원두인가요?”

그 순간 사장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을 청년은 알지 못했다. 커피를 마시며 시선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안티구아 맛도 몰라? 이거 완전 초짜 아냐.’

“예가체프예요. 아무래도 신 거는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아! 그렇군요. 와 좋네요. 케냐보다 이게 좀 더 제 취향이네요.”

표정이 굳어진 사장은 서랍에서 명함을 꺼냈다. 카페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이었다. 명함을 청년에게 내밀며 인사했다.

“그럼, 편하게 마시다가 들어가 보세요! 아무쪼록 저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저도요.”

직원에게 청년을 대충 부탁하고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는 사장의 뒷모습을 보며 청년은 그가 참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직원은 설거지를 하느라 뒤돌아 있었다. 혼자 서있던 청년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그럼 이거 앉아서 마실게요!”

“네! 아, 그리고 결제는 케냐만 해 드리면 될까요?”

“아, 결제요? 네? 아! 네… 카드 여기요.”

공짜인 줄 알았다가 갑작스러운 결제라니 기분이 언짢았지만, 청년은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도 뭐… 예가체프도 한 잔 더 마셨으니 괜찮은 거지.’


얼마 뒤 지하철에서 자신의 손에 감긴 카메라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청년은 이 모든 상황 속에 미묘하게 녹아있던 어색한 맛의 이유를 그제야 깨닫고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치 목구멍을 넘어간 커피의 향이 다시 치고 올라오는 뒷맛과도 같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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