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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n 24. 2024

늦은 밤 비 오는 길을 걷는 건 위험하다

늦은 밤 비 오는 길을 걷는 건 위험하다. 빗물을 마시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감정에 잡아 먹힌다. 수증기가 응결되어 비가 되듯, 마음속에 감정의 안개가 자욱하면 곧 무언가가 맺히기 마련이다. 그 감정의 아련함은 음악을 끌어당기고, 음악은 또다시 기억을 끌어당긴다. 그러면 무겁기만 했던 내 감정이 무엇인지 마침내 알게 된다. 나는 울적하구나.


독서모임에서 2시간 넘게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나눴었다.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듣는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특히, 나의 외로움과 공명하도록 내 마음을 열었을 때는 더더욱. 이런 마음은 가지고 있을수록 나를 더 무겁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 걸으면서 털어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가 왔던 것이다.


감정이 짙어질수록 겁이 났다. 이 감정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노래의 가사들이 나의 이야기를 자꾸만 기억나게 했다. 차라리 음악을 듣지 말아야 할까? 하지만 아무도 없는 비 오는 밤, 빗소리 속에 혼자 걷는 소리도 음악만큼이나 나를 자극했다.


그럴 거라면, 슬퍼하도록 하자. 슬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공평하니까. 마음이 무너진다고 해도 그렇게 놔두자. 감정에 파묻힌다고 해도 오늘은 좀 놔둬보자. 조금만 걷기로 했던 길을 계속 걸었다. 간혹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기 싫어 우산을 내리고 물었다. 무엇이 그렇게 슬픈 건지. 그러자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어진 표정이 어떤 모습인지,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렸을 적 울다가 거울을 봤을 때의 그 표정을 지을 때와 똑같았을 거다. 아버지가 멀리 떠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였겠지만,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 가지 마.”


감정을 통제하지 않고 지켜보는 건 고역이었다. 곧 슬픔이 나를 압도하겠지? 이제 곧 터지는 걸까? 그런데 생각보다 감정이 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은 순식간에 사라진 듯 정리되었다. 슬픈 음악을 듣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당황스러웠다. 뭘까? 스스로 슬픔을 억압하는 걸까? 감당 못할까 봐 겁나서? 그러면 왜 겁이 나는 걸까? 끝없이 물었다. ‘알고 싶다’는 욕망은 애처로운 집착에 가까웠다.


“좀 놔둬.” 우악스러운 노크와 같던 질문들 곁에서 누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좀 놔둬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마음이 흘러갈 시간을 줘라. 그래도 괜찮으니까. 네 마음이 어디로 떠나가는 건 아니잖아? 조금만 더 기다려 줘라.” 그 훌륭한 조언자는 곧 그 슬픔 다음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해주었다. “네가 슬펐던 이유는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인 거야.” 만약 이 순간 즈음에 비가 딱 그쳤으면 뭔가 타이밍이 맞았을 것 같다. 하지만 비는 아까부터 소강상태였다. 우산을 옆으로 기울여보니, 얼굴에 이슬비가 튕기는 듯했다. 한 여름의 습기는 여전히 꿉꿉하고, 끈적끈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렇게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따듯했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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