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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Oct 09. 2023

마음탐험가로 살기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고

읽은 책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저자 : 솔제니친

출판사 : 민음사 (1998)

작성 일시 : 2023년 10월 9일 저녁 10시




책은 얇았다. 하지만 읽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해설까지 218페이지면 마음먹고 하루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 2주 정도를 끌었던 거다. 바빴나? 게을렀나? 다른 책들을 읽느라 시간이 없었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표면적인 이유였다. 나는 마음탐험가 아닌가?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을지가 궁금했다.


안도감과 그에 따른 미안함. 그리고 슬픔이었다.

비유하자면 물에 빠졌다가 겨우 빠져나왔기에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아직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미안하고 슬픔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슈호프의 수용소 생활은 책장을 여는 나에게는 일종의 현실이 되지 않는가? 슈호프는 지금도 여전히 고통 속에 있지 않은가? 그를 보면서 나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다. 나는 가을 산책을 즐기며 커피 한잔과 재즈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지금은 크게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생면부지의 소설 주인공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거다.


철저하게 자유가 제한되는 수용소의 생활.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고, 군인들의 총구와 채찍 앞에서 눈치를 보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작업을 해내야 한다. 절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기에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를 의심하고 투쟁하며, 두려움과 불안 속을 살아간다. 다른 놈들이 오늘 죽는다면 나는 내일 죽을 거라는 마음이다. (195) 살아남아야 하기에 자존심이나 존엄성 같은 건 챙기지 않은지 오래다. 형기를 마쳐도 또 형기가 연장이 되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204) 극단적 절망의 시공간.


나에게 가장 슬펐던 점은, 사람은 이 모든 것에 적응해 버린다는 점이다. 내일이 의미 없으니 부조리한 현재를 어떻게 생존할지만 생각하며 살아간다. 잠자는 것과 먹는 것이 사는 의미(23)이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양배추 수프를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는가? 숨겨놓은 빵이 무사히 있을까? 내 펠트 장화는 잘 마르고 있는가? 오늘따라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리는 슈호프는 “운이 좋다”고 여긴다. 하루를 “행복하다”(208)고 평가하기까지 한다. 죽음과 맞닿은 노동수용소에서 말이다. 침대에 누워 귀하디 귀한 소시지를 씹으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상상할 때, 내가 느낀 건 슬픔이었다.


이 모든 걸 관음 하듯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것은 일말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심리적인 작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더 심각하게 미안했던 점은 나도 모르게 고통들을 비교하며 계량화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랭던 길키의 [산둥수용소]가 생각났었다. 누군가의 고통이 누구보다는 더하거나 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흠칫 놀랬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내 고통을 객관화하고 싶은 욕망이 발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어쨌든 남의 고통을 저울질하다니 이 무슨 개짓거리 인가? 그런 나의 비열한 부분을 마주 대하면서 한숨을 쉬고, 책장을 덮고, 화끈거리는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느라 책 읽기가 늦어졌던 것 같다.


이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아직도 나의 고통은 잔향을 울리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내 마음을. 그렇게 사람을 더 배우고, 알아갈 수밖에 없다. 마음탐험가로서 살아야 하는 거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작은 위로라도 건넬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잠시 기도해 본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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