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을 위하여
2021년 - 가을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심심한 한 해였지만, 지나고 보니 참 평화로웠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여지없이 변화는 찾아왔고, 그 과정 속에서 다시 크게 성장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로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성 투성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자연의 템포에 순응하는 평화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철원 집과 농장, 업무가 있을 때는 전국 각지 호텔과 리조트를 순회했고, 매일매일을 하늘, 땅, 산, 바다를 보며 지냈다. 이런 안정감 속에서 둘째도 찾아와 엄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한 해를 그렇게 마무리하나 싶었는데, 오랫동안 도움을 드렸던 고객사 중 한 곳에서 HR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미 2020년에도 부탁이 있었지만 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당연히 고사했었는데, 9개월 뒤에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에 주기적으로 고객사에서 방문하며 문제들이 악화되는 모습을 봐 온 것도 있었고, 구성원들과도 나름 가까워져서 남일처럼 외면하기가 미안했다.
그리고 고객사 입장에서도 나만큼 회사의 문제와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 판단했던 것 같다. 밖에서 하던 컨설팅을 그냥 안에서 구성원으로서 이어나가면 되는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늦은 가을, 결국 가치크리에이션은 새로운 고객을 받지 않고 기존 고객만 유지하면서 파트타임으로 그 고객사의 HR을 맡기로 했다. 마지막 회사에서 퇴사한 지 10년 만에 팔자에도 없던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세 번 철원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시작했다. 너무 피곤해서 이러다 졸음운전으로 죽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반년을 그렇게 버티다 결국 떠난 지 2년여 만에 예정보다 3년 일찍 서울로 돌아왔다 (함께 고객사로 출근하게 된 김지현 파트너도 태어나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임신한 아내 돌보기, 전원생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데 최적화된 업무 강도,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성장세에 있던 사업…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을 희생해야 하는 선택이었지만, 괴로워하는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입장에서 조금은 그들이 편안해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고, 밖에서 조언만 하지 않고 안에서 변화를 주도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물론 평범하지 않은, 한결같이 나다운 이상한 선택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1년을 일하고 2022년 말에는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이전에 내가 밖에서 했던 조언들이 왜 안에서는 적용하기 힘들었는지를 제대로 체험하고 왔다. 독립 전에도 직장생활을 적게 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임원으로서 HR을 맡았는데도,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덕분에 가치크리에이션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고객들을 도와야 현실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깨닫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그 뒤로 우리는 2014년부터 8년간 이어온 가치크리에이션 버전 1.0을 마무리하고, 백지부터 완전히 새롭게 모든 것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021년을 돌아보며 얻은 교훈은,
1. 경험해보지 않고 조언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2. 때로는 불구덩이 뛰어들어갔다 나오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3. 근육도, 나의 생각도, 주기적인 부숨으로 성장한다.
2024년 3월 14일
박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