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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앤디 Mar 15. 2024

지난 10년에 대한 회고 #9, 2022년

미래의 나,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을 위하여

2022년 - 가족에게도, 도움을 주기로 했던 고객사에도, 미련 없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줬습니다.

그리고 남은 한 해는 그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회복하는데 집중했습니다.



2021년 말, 20년 넘게 루프스로 인해 진행된 간경화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응급실에 실려가기 시작했다. 이식수술 말고는 희망이 없는 상태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다행히 지인의 도움으로 세계최고 간이식수술 권위자에게 3개월 내에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참고로 간이식수술은 원한다고 받을 수 없다. 다른 옵션이 남아 있지 않고 거의 사망 직전 상태 정도 되어야 그나마 대기 리스트에 오르고, 수술일정이 잡히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대기 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기증자도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국가에서 허락해 준다.


2021년 11월에 소식을 듣고 바로 절차를 시작해 2022년 1월 어머니에게 간의 반 이상을 성공적으로 기증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회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2022년 말에는 거의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많이 걸을수록 회복이 빠르대서 온갖 줄(펜타닐 포함)을 달고 병실을 시간마다 뱅글뱅글 필사적으로 돌았다.


주변 사람들은 전혀 고민하지 않고 기증을 결정한 내가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밖에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나에게 생명을 준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필 코로나가 한창이라 수술 전에, 나나, 어머니나, 담당 의사 등이 감염되어 겨우 잡은 일정이 밀리면 어쩌나 마음 졸였고, 수술 전날까지도 업무를 하며 노트북과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수술 일주일 전에는 둘째가 태어나면서 아내는 한동안 남편도 없이 산후조리를 해야 했고, 퇴원 후에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되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의 간병인으로 함께 입원하면서 어머니, 아버지, 나, 출산한 아내, 둘째, 이렇게 다섯 명의 가족이 동시에 병원에 입원해 있고 첫째는 외갓집에서 머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퇴원 1주일 후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컨디션이 조금씩 나아지는 만큼 업무량을 늘려가며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코로나 기간 중이라 원격근무가 가능했고 이동할 일이 많지 않았다.


수술 후 몇 달 동안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복대를 차고 있었고, 복대를 풀고 난 후에도 벨트가 있는 옷은 입지 못했고, 한 시간 이상 서 있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10분만 연달아 말해도 숨이 찼다. 수술 후 복근에 힘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일어서서 말하는 일을 하루 수 시간, 때로는 하루 종일 며칠을 이어서 해야 하는 나에게는 작지 않은 장애물이었다. 간 반쪽이 없어서 아마 피로도 더 빨리 느꼈을 것 같다 - 멀쩡한 간 갖고 있는 사람도 간 때문에 피곤하다는데.


가을 즈음에는 HR을 맡았던 고객사에서도 조직 구조상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다시 온전히 가치크리에이션의 박앤디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고갈되어 있던 체력과 마음을 포항 바닷가 땅끝 마을에 머물며 충전했다.


오랜 로망이었던 구룡포 과메기 마을에서의 요양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 우리끼리 내부 워크숍을 열어 지난 1년의 경험을 회고하며 고객사 내부에서 경험한 현실과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데 남은 한 해를 할애했다. 1년 사이에 이미 신규고객 확보 기회를 놓친 것은 물론, 기존 고객 중에도 손 놓고 떠나보낸 장기고객도 꽤 있었다. 백지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개인적으로, 사업적으로 피해가 컸다.


그래도 살 것 같았다. 마음만은 평온했고, 자유로웠다. 한번 반대의 경험을 극단적으로 하고 나니, 다시 나답게, 우리답게, 우리가 가장 잘하고 공기처럼 매일 숨 쉴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돌아보니,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도 이런 마음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 사명임을 상기시켜 준 감사한 시간이었다.


낙산공원 숙소에서 내부 워크숍 진행 후 맞이한 아침


2022년은 매일매일이 교훈이었다. 요약하자면,


1.  힘든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아, 그 여름, 아내/아이들이 탄 차는 다중추돌 사고로 폐차도 했다).

2.  위기 상황에 형제는 큰 의지가 된다 (나는 형제가 없지만, 처가식구들 덕분에 무사히 이 시기를 넘겼다).

3.  Carpe diem. Memento Mori.


2024년 3월 15일

박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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