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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앤디 Mar 08. 2024

지난 10년에 대한 회고 #2, 2015년

미래의 나,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을 위하여

2015년 - 가장 힘들고, 가장 행복했던 한 해로 기억합니다.

클리셰이지만, 하나의 문이 닫히고 더 큰 문이 열렸던 해입니다.


#2

2014년 5월에 개인사업자로 B2C 사업을 시작했던 가치크리에이션은 2015년 6월 법인으로 전환했다. 그 사이 이전 직장 동료, 후배, 우리 콘텐츠에 매료된 열성 고객 등이 팀에 합류하여 5명이 열심히 뛰었다. 사업적 성과는 미미했지만, 우리 모두가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한다는 사명감, 스스로 체감했던 강점의 효과, 새로운 시도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의지 등에 이끌려 1년을 버텼다. 그리고 법인전환 5개월 만인 2015년 10월, 팀은 해산했다.


직장에서 리더로 일하는 것과 대표가 되어 고용주로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너무 달랐다. 전에 없던 새로운 교육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하지만 요리에 자신 있다고 외식사업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후배는 취업 지원서 작성과 면접준비까지 도와주고 작별했다. 면접 때 입으라고 정장도 줬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그렇게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였다. 심란한 마음에 밤마다 청계천을 걷고, 자정 넘어 불 꺼진 명동성당 앞 벤치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 오기도 했다.


새벽에 찾아갔던 명동성당


그때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줬던 것 중 하나가 팟캐스트였다. 대체 나 혼자서 강점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대학교 때부터 DVD 시절의 넷플릭스로(미국 대학시절 넷플릭스는 watchlist를 만들어 놓으면 순서대로 DVD를 우편으로 발송/회수했다) 일주일에 10-20편의 영화를 챙겨보던 취미와 강점을 결합하여 영화 속 인물의 성향을 분석해 보는 ‘영화의 심리학’이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무작정 아이폰 한 대를 테이블 가운데 놓고 지인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아 매번 다른 청취자들의 신청을 받아 서울 곳곳에서 공개 녹음과 상영회를 열기 시작했다 (나중엔 제주도도 진출했었다).


당시 MBN 취재 기사


이전까지의 영화 관련 방송은 배우, 감독, 평론가 등이 관객은 잘 모르는 지식을 전달하는 형태였다면, 영화의 심리학은 내가 알기로는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대화를 이끌어 가는 최초의 살롱 형식의 영화 방송이었다. 그래서인지 단숨에 아이튠즈 영화/TV 차트에서 1위, 전체 팟캐스트에서 10위에 머물며 계속 상위권을 유지했다. 보통 사람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전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갓난 아기도 함께 했던 공개 녹음

영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이다 보니, 방송을 계기로 강점을 몰랐던 사람들도 성향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결국 청취자였던 기업의 교육담당자들도 연락을 주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가치크리에이션이 2016년부터 B2B로 대부분의 비중을 전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팟캐스트의 영향이 컸다.


아마 2017년 말에 중단하지 않고 지금까지, 또 유튜브로, 방송을 지속했다면 상당한 인플루언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히트곡 한 개로 평생 사골국물 우리는 일은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명예욕보다는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를 부담스러워하는 면도 있고.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서 보람을 느끼는 성향을 가진 나로서는 타인이 아무리 칭찬해도 내가 지루해지면 멈추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래서 미련도 없다.


시작 4주 만에 영화/TV 카테고리 1위, 전체 5위에 올랐었다.


2015년 내가 주저 않지 않게 도와줬던 다른 하나의 힘은 새로운 공부였다. 평소 다양한 책에서 접하던 논어 구절들이 너무 공감돼 학부 때 거의 정반대 학문인 서양의 심리학을 전공했던 내가 2014년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일반대학원에 입학했다.


밤이나 주말에 갈 수 있는 특수대학원을 놔두고 학부 전공자가 대부분이었던 일반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멋도 모르고. 막 시작한 사업만으로도 바쁜데 오전에 업무 보고, 오후에 학교 가고, 저녁에 다시 일하고, 밤에는 과제하는 삶을 3년간 살았다.


제일 흥미롭게 들었던 전헌 교수님의 강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전헌 교수님 인터뷰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09/2016040900170.html


하지만 매일 내가 가진 지식과 통찰을 밖으로 쏟아내고 소모하는 일을 하다 보니, 한 걸음 물러서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도와주는 수백수천 년 전 이야기들이 나를 다시 채워준다는 느낌에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 배운 지식은 현재 업무에 직접적으로 쓰이지는 않고 있지만, 어떤 교육을 기획하거나 컨설팅 결과물을 만들든, 단단하고 일관된 철학적 기반을 먼저 세우려는 모습은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다. 목표 달성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적을 먼저 고민하고 올바르게 설정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노력이 습관이 되었다.


오늘도 2015년을 마무리하며 교훈을 정리해 보자면,


1.  사업은 아이템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2. 결핍이 클수록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해답을 찾을 기회도 늘어난다 (물론 괴롭지만).

3. 익숙함을 스스로 벗어던질 수 있을 때 새로운 성장도, 기회도 찾아온다.


2024년 3월 8일

박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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