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Feb 01. 2022

자가격리로 잃은 것과 얻은 것

두 돌 아기와 함께한 격리 생활

네, 네? 자가격리요?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을 했다. 입원 1 2 만에 갑자기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퇴원 조치됐다. 다음  저녁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병동 간호사 중에  확진자가 나왔는데 우리 아이가 밀접접촉자란다.


그날 저녁부터 우리 가족은 자가 격리자가 되었다. 그렇게나 조심하며 다녔는데.. 치료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격리가 되다니 황당하고 속상했지만, 그나마 하루라도 입원해서 힘들게 치료받은  어디냐는 심정으로 위안했다. 어차피 벌어진 상황, 나쁜 면을 곱씹어봤자  속만  아프니까. 그저 아이가  악화되지 않고, 약물 치료로 끝까지  낫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열흘을 그렇게 보내고 pcr 검사 결과 음성이 확인되어 다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도 엑스레이 확인 결과 깨끗하게 나았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쉽지만은 않았던 시간을 보내고 돌아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래와 같은 글을 쓰는 것도 아이가 결국 격리 기간 동안  탈이 없었고, 다행히  나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격리기간 동안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로 인해 아기가 힘들어했다면 아래와 같은 톤의 글을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동전의 양면 같다.


# "자유롭다는 "의 가치

 제 아무리 집순이라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건 정말 답답한 일이었다. 내 선택으로 안 나가는 것과는 아예 다른 기분. 생각해보니 이렇게까지 신체적 자유가 없었던 적은 없다. 특히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이 묘했는데, 나의 위치가 추적이 되고, 누군가 지켜보고 통제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나의 두 발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떤 의미로든 '갇힌' 상태가 아니라는 것, 가고 싶은 곳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었다. 자가 격리 이후 더 열심히 집 앞 공원을 걷는다. 이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일상 그 평범함이 아주 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격리 다음 날, 불안과 걱정의 고리

나는 (지금은 노력해서 많이 나아졌음에도) 여러 가지를 앞당겨서, 엄청, 걱정하는 타입이다. 다만 내가 걱정을 해봐야  모든  통제할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최근 2~3 사이에야.. 어렵게 깨닫게 됐다.


그래서 반드시 대비해야 하는 일들이 아니라면,  느슨하고 무사 태평한 마음을 갖자고 결심했었다. '닥치면 생각해'라는 마인드를 적용하는 경우를 하나하나 늘려보자는 마음. 문제는 이럴 일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 아직 애매하고, 특히 '아이'문제와 겹쳐지면  혼란스러워진다는 .


격리 다음  새벽, 역시나 일찍 깼다. 불안감에 잠자리도 사나웠다. 아이가 갑자기 집에서 넘어져 크게 다치기라도 해서 응급상황이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부터 시작됐는데, 이윽고 모든 것이 더욱 불안해졌다.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꽤나 적지 않은 집들이 아이의 응급 상황으로 아주 곤란한 상황을 겪은 일들이 나왔다.


나는 9시가 지나면 바로 보건소에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문의하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자가격리 담당자가 지정되지 않았고 따라서 관련 안내도 전혀 받지 못했다. 격리 5일인가 지나 담당자가 지정되고 나서 받은 서류 중에는 이런 경우에 대한 안내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도 새해에 결심한 바가 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남편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남편은 내가 어떤 유형의 걱정을 어디까지 하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내가 이와 관련하여 어떤 결심으로 일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최적으로 논의가 가능한 상대다.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니, 이 걱정은 만약 아이가 없었다면, 그러니까 나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걱정이라는 것까지는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전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 전화 제외), 이런 일로 전화를 걸어 '통화'까지 해야 하는 건 더 싫었다. 남편과 둘이 격리되었다면 이 일로 문의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이와 동시에 나는 '벌어 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 때문에 낯선 사람과 전화를 하는 일이 귀찮기도 하고 여하튼 여러 가지로 괜히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대화 끝에 일단 '지금 당장' 전화를 해서 문의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막연하게 '조금 있어보기로'  이다. 며칠 지나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때 궁금했던 것들을 문의할  있었다. 이런 류의 모든 일들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앞서 걱정하고, 혼자만의 불안감에 쫓겨 잔뜩 어두운 마음으로 '당장' 움직여왔던 고리를 끊고, 다른 방식의 행동을 취한  내게는  의미였다. '잠시 멈춰서 생각했다' , 그게 중요했다.


  설령 다른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그게 '늘 해오던 특유의 방식, 그러니까 자동반사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잠시 한 숨 돌리고 생각해 본 후에 결정한 것'이라면 그것도 역시 의미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여하튼 나는 덕분에 에너지도 좀 더 세이브할 수 있었다. 이런 류의 걱정과 그에 비롯된 행동에는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소모돼서, 겉으로 보기에는 별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괜히 나 혼자 지쳐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  2022년 1월, '그해 우리는'

  자가 격리 기간  얻은 가장  것은 남편과 '그해 우리는' 정주행   아니었을까.  드라마 보는 낙으로  시간들을 버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격리가 아니었다면 남편과  드라마를 같이  짬은 없었을 것이다.


분명 남편이랑 같이 봐서  재미있었다. 남편의 코멘터리는 꽤나 시끄럽지만 꽤나 웃기기도  것이다. 화도 쌓이지만 그만큼 재미도 쌓이고, 역시 잃는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재미가 쌓이는 만큼 화가 쌓이기도 한다..역시 얻는  있으면 잃은 것도 있다 크크). 열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던 , 그건  좋았다. 물론 불편한 점들도 정말.. 많았지만, 그래도 함께 복닥복닥 지낸  좋은 기억으로 남을  같다 :)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가만히 복닥이는 날에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