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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26. 2022

여전히, '책과 글' 그리고 '문학'만이 갖는 힘

이어령, <거시기 머시기>

그러니까 여전히, 아니 '언제나' 책과 글에는 힘이 있다고 확실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인 일인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요즘 세상의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세상 그리고 그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야 할 자식을 둔 입장에서 이런 굵고 힘 있는 목소리는 참 든든하다.


이어령, <거시기 머시기>, 김영사(2022)

이어령 선생의 책 <거시기 머시기>에는 총 8편의 원고가 실려 있다(저자는 이 책 편집 중에 영면에 들었다고 한다). 여는 글을 제외하고 다섯 번째로 실린 <디지털 시대, 왜 책인가>는 2013년에 개최된 도쿄국제도서전 특별 대담 섹션의 원고다. 대담자는 이어령, 다치바나 다카시이다. 그중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맺음 강연 중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트위터에 올라오는 140자를 읽기보다 A4 두 장 분량 정도는 되는 글을 읽거나 새로 나온 책 한 권까지는 안 가더라도 어쨌든 책을 통해 글을 읽었을 때, 모든 문제에 대해 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이해의 폭은 굉장히 달라질 겁니다. 그 책을 쓴 사람들이 투입한 지적 노력의 에너지, 그것이 좋은 정보를 잘 압축하는 방향으로 갔을 때 정말로 엄청나게 큰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글로 이루어진 책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이죠(p.170)"


이 문장은 이어령 선생이 같은 책 다른 글에서 말한 내용과 연결됐다.


"책의 내용과 관계없이 책값은 쪽수와 제책술 같은 하드웨어에 비해서 가격대가 비슷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책이 아니라 책을 만든 비용에 대해서 그 대가를 치러온 것인데도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원래 정보와 지식은 상품으로서의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격 시스템이 아니라 가치 시스템에 속해 있기 때문이지요.(pp.57-58)"


내가 책을 읽으며 느끼는 커다란 고마움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좋은 책을 만나면 그 어마어마한 지적 노력의 에너지에 감탄하게 되고 그로부터 그때그때 필요한 영향을 받는데 나는 언제나 책의 물성에 대한 값만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관리만 잘하면 꽤나 오랫동안 언제든 펼쳐볼 수 있고. 요즘이야 전자책까지 있으니 뭐 더욱더. 그렇지만 난 종이책을 본다. 종이책의 질감과 냄새가 주는 느낌 자체를 너무 좋아하고, 종이책의 형태가 나의 뇌구조에 더 맞는 것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책의 첫 번째 챕터는 선생의 이화여대 고별 강연(2001년 9월) 원고이다. 선생은 여기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분석한다. 그러면서 흑과 백 사이, 그레이 존 gray zone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는데, "시의 공화국에서는 그 '그레이 존'이야말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삶의 체험을 깊게 하는 이상향(p.21)"이라고 말한다.


나는 꽤나 오랫 시간 동안 인생의 스테이지마다 스스로를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을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싫어했다. 선생의 글을 읽다 보니 어쩌면 오히려 이런 성향이 내 삶의 체험을 더 깊게 했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완전히 어느 한 영역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 않는다기 보다 애초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의 특성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새와 짐승에게 있어 고정관념과 자신이 속한 영역의 벽을 허물 수 있게 하는 것이 역박쥐의 정보 역할입니다. 정보는 지식처럼 축적하는 데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의 새로운 유통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박쥐는 짐승이나 새의 한 영역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영역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27)


선생은 말한다. '고정관념과 양분법의 풍토에서 흑백논리에 대한 가위의 세계를 가르치는 외로움은 요즘 유행하는 속어로 왕따가 되라는 말과 같은 것(p.48)'이라고. 문단에서도 대학가에서도 심지어 제자들 사이에서도 소외된 작은 섬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고. 그럼에도 조류가 바삐 그의 곁을 스쳐 지나고 있을 때 그만이 한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고.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나'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이 시요,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법, 경제에서는 '베스트 원'을 추구하지만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는 '온리원'을 지향합니다. (p.18)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온리원' 그러니까 오직 '나'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이 시이자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베스트 원'을 추구하는 세계에서 '온리원'을 지향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에게든 그레이존의 삶은 외로움과는 떼려야 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 또한 그레이 존에서 무성하게 자랄 눈부신 푸른 잎을 소망하며 한자리에 묵묵히 서 있을 수 있길 다짐해본다.


  고별강연에서 선생은 말한다 이화는 내 젊음을 묻은 곳이라고. 나는 이화에 내 젊음을 묻지는 않았지만 생기 넘치던 젊은 시절의 한 때를 그곳에서 보냈다. 눈을 감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교정이 선하다. 채플 들으러 뛰 오르던 계단, 어떤 날은 조금 떠들썩하고 어떤 날은 조금 외로웠던 공강 시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중앙도서관과 아름뜰.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 20대의 삶은 이제 말 그대로 내게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이고 그중에서도 '학부 시절의 나'는 더욱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때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훨씬 좋지만, 이화의 어여쁜 교정만큼은 오늘처럼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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