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r 26. 2024

<밀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기를

2014년 봄에 방영된 드라마 <밀회>를 거의 10년이 지나 처음 제대로 보게 됐다. 시작부터 엔딩까지, 아름답고 정교한 작품이었다. 가슴 저릿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 하지만 10년 전에 봤다면 이토록 재미있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이 작품의 '여자 나이 마흔'이라는 설정과 관련이 있다.


나는 올해 세는 나이로 42살이 되었다. 극 중 오혜원의 나이가 40세이다. 브런치에 드라마나 책 리뷰를 쓰면서 '마흔' 혹은 '삼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다.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특정한 어떤 시기. 안판석 감독에 대한 글도 남겼었는데, 이 드라마는 안판석 감독이 연출하고 정성주 작가가 대본을 썼다. 작가, 감독, 배우(주/조연 모두) 정말 누구 볼을 꼬집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10년이 다 되어가니 뒷북도 너무 뒷북이지만, 특급 칭찬을 하고 싶다.


내가 드라마 <봄밤>과 <밥누나>를 자꾸 보는 이유 - 안판석, 드라마는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 거예요
봄밤, 사랑에 빠진다는 '추락'에 대하여 - 서른다섯, 인생의 대혼란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성장과 금기의 위반 - 그런 삶의 나이, 서른다섯


3화를 보다가 오혜원 집의 주차장 문이 열리며 이선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도쿄타워>(2005년)의 한 장면, 이글거리는 도로 위로 마츠모토준이 등장하는 씬이 떠올랐다. 소위 말하는 한국 영화 3대 등장씬 이런 것처럼 한국 드라마 등장씬을 꼽는다면 <밀회>의 이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보름달이 뜬 밤, 차가운 공기, 선재의 표정과 입김, 카메라 워킹, 의미심장하게 깔리는 배경음악까지 밀회 분위기의 정수를 잘 담고 있는 장면이다.


정주행 후 찾아보니 <밀회>는 애초에 위 소설을 원안으로 기획된 드라마였다. 20대 초반 당시 소설보다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봤었다. 영화의 영상미와 클래식 음악이 주는 매력이 컸고 무엇보다 당시에는 마츠모토 준을 좋아했다(사진을 아무리 보여줘 봤자 남편이 도저히 이해를 못 하지만).  


내가 본 안판석 감독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을 떠올려본다면(두 작품 모두 김은 작가), 감독은 여성의 성장 서사에 관심이 있고, 그 성장은 여성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떨어져서 작동할 수 없고, 사랑이 촉매제가 된다. '성장'과 '금기의 위반'은 세트라서, 그들의 사랑은 크고 작든 일종의 금기를 위반한다. 위반하게 되는 금기의 경중을 굳이 따지자면 '밀회' >>>>> '봄밤' > '밥누나' 정도가 될 것 같다.


오혜원, 윤진아, 이정인은 모두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진짜 사랑을 '사고'처럼 경험하게 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변화의 표면적 양상은 '추락'이다. 오혜원의 추락의 폭이 가장 크고 제일 많은 것을 잃는다. 상류사회에 속하고자 하는 욕심이 컸던 만큼, 더 많이 가짜였던 만큼,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거의 전부를 잃게 된다.


<밀회>의 오혜원과 <밥누나>의 윤진아는 <봄밤>의 이정인보다는 훨씬 비슷한 지점을 공유한다.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자신이 속한 상황 속에 매몰되어 다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사는. 이들은 스스로를 학대하는지도 모르는 채 살다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정성스럽게 대해주는 상대를 만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물론 오혜원은 똑똑하다 못해 대놓고 영악하고, 윤진아는 적당히 착하고, 조금 미련하고, 때로 이기적인 캐릭터라 차이는 크다. 오혜원은 어쩌면 뇌까지 섹시한 그 똑똑함으로 인해 더 크고 확실한 선택을 주체적으로 해나간다.

 

오혜원과 윤진아는 각각 이선재와 서준희를 만나면서 자신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게 되고, 그간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과 전쟁을 치르듯 갈등을 겪는다. 그제야 제로 베이스의 상태로, 기본값으로 돌아간다. <밀회>는 이 여정의 스케일이 훨씬 크고 거칠고 가혹하다.




혜원은 1화에서 '여신'으로 등장하여 선재의 표현대로 그를 거듭나게 하고 그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그를 구원한다. 이 구원은 마치 어두운 곳에 달빛이 비쳐 그 자신인 채로 모습이 드러나며 '발현'되는 구원이다. 선재도 혜원을 구원하게 되는데, 선재는 혜원이 속한 '속(俗)'의 세계와 정반대의 장소, '성(聖)'의 세계에서 혜원의 영혼을 구한다.

JTBC <밀회> 공식 홈페이지

혜원이 속한 세계는 어디인가? 진짜 제일 꼭대기에는 재벌 회장도, 돈도 아닌, '돈이면 다 살 수 있다고 끝도 없이 속삭이는 마귀'(8화)가 똬리를 틀고 있는 세계이다. 혜원은 이토록 시커멓지만 겉은 빛나 보이는 화려한 세계에서, 축축하고 위험해 보이는 어둠으로 들어간다. 깊은 어둠 속에 있는 작지만 환한 선재의 방에서 자신의 옷을 벗고 선재의 옷을 입는다. '우아한 노비'로 살던 혜원의 세계는 "'사랑'이 '신'인 세계"로 옮겨간다. 혜원의 주인이 바뀌는데, 결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 혜원은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랑의 신이 주인이 된 세계, 선재의 집에서 혜원은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 선재는 귀하디 귀하게 그녀를 대접한다. 조금이라도 냄새가 덜 나는 수건으로 혜원이 손을 닦을 수 있게 고이 건네주고, 혜원이 앉을 바닥을 정성스레 걸레질하고, 그녀가 오를 계단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1화에서 선재는 혜원의 발에 꽂힌다. 왜 발인가. 선재는 왜 혜원의 발에 꽂히는가. 혜원은 '주로 서 있고, 구두를 신은 채 자기도 하는 사람'(9화)이다. 혜원은 더러운 일들을 뒤처리하느라 숨 쉴 틈 없이 바쁘다. 그 모든 악한 것들을 상대하며 곳곳을 다닌 혜원에게 발은 가장 추한 치부다. 선재는 혜원의 구두를 늘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돈해 둔다. 혜원이 처음 선재의 집에 들어간 날, 발을 물로 씻게 되는 상황은 상징적이다. 마치 세족식처럼. 언제나 올라가 있던 하이힐 위에서 내려온 혜원의 발, 선재의 집에서 깨끗해진 혜원의 맨발은 껍데기가 벗겨진 혜원이다.


JTBC <밀회> 공식 홈페이지


선재의 '집'은 혜원에게 천국 같은 곳이 된다. 그곳에서 쉬고 먹고 잠들고,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안식의 시간을 갖는다. 선재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정화의 장소인 그곳은 마침내 발각되고 침범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오로지 '속'의 세계에 속한 자들은 이 장소에 들어오지 못한다. 쥐에 겁을 먹고 쫓겨나든, 선재의 간절한 방어로 쫓겨나든.


낡고 허름하지만 따뜻하고 환한 방은 혜원의 집이고, 마음이고, 천국이기에 드라마의 엔딩 장면은 그 집을 따스하게 비추며 끝난다. 빈 집을 나서는 선재의 마지막 대사는 '다녀올게요'. 선재의 집은 언제고 결국 돌아올 그들의 안식처다. 극 중 어떤 집은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는 지옥 그 자체이고, 혜원의 집은 그녀에게 직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혜원이 남편과 사는 집에서 늘 가디건이나 로브를 걸치고, 따뜻한 컵을 손에 감싸 쥐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비단 패션이나 협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혜원은 춥고 외롭다.


1화에서 선재는 파란색 ‘믿음퀵’ 조끼를 입고 등장한다. 3화의 첫 키스 장면에서 혜원은 선명한 파란색 목도리를 매고 있고, 그녀가 선재의 방에서 입은 그의 티셔츠도 양팔이 파란색이다. 혜원이 처음 혼자 선재의 방에 찾아왔을 때 혜원의 드레스코드는 빨강이다. 혜원은 겉으로는 차분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욕심으로 뜨겁고, 선재는 에너지 덩어리로 보이지만 욕심 없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선재는 혜원을 '믿고' 기다리고자 하며, 그녀에게 기회를 준다. 다미가 선재에게 혜원이 얼마나 무섭고 교활한 여자인지를 고할 때, 선재는 '한 번은 기회를 줘야지'라며 울부짖는다. 거듭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갱생'의 기회를.


혜원은 선재의 입을 통해 1화에서 '여신'으로 등장하여 8화에서는 '내 여자(여인)'로, 마지막화에서는 '내 기지배'로 강등된다. 신계에서 인간계로 하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혜원과 선재가 선생과 어린 제자를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해지는 것이다. 선재는 머슴아이기도 하니까. 한쪽이 우위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0도에 이른다.


"나 잊어도 돼.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했어. 사랑해 줬고, 다 뺏기게 해 줬고.. 내 의지로는 절대 못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도 돼"


혜원은 면회를 온 선재에게 위와 같이 말한다. 엔딩 장면 다음으로 이 장면이 나는 가장 슬펐다. 선재는 '집 비워놓고 어딜 가요'라고 답한다. 선재는 혜원이 죗값을 치르는 동안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혜원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잃게 하고 변화하게 한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있다. 혜원은 교도소 담벼락 가장 낮은 곳에 앉아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혜원에게는 이제야 드디어 발 뻗고 자며 하늘과 들꽃을 바라볼 수 있는 가벼운 마음이 생겼다. 혜원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탐스러운 머리카락마저도), 돌아갈 진짜 ‘집’만은 남아있으며 선재는 분명 혜원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것이 거짓과 불신의 세계가 아닌 믿음의 세계에 사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모든 시작은 혜원이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못한 것, 시녀를 자처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녀는 왜 20대 때부터 상류사회를, 성공만을 꿈꿨을까?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싸구려라도, 나를 표현하고 담아낼 여지가 있다'라고 누군가 아직은 어린 그녀에게 진심을 다해 알려줬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선재는 어리지만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없는' 처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스스로의 상황을 그런 ‘처지’로 여기지 않는다가 더 정확하겠지만), 오히려 허름하지만 '자신만의 역사와 과정'이 담긴 유일무이한 그 집에서 자신감을 얻고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나 역시 혜원처럼 몰랐던 것 같다. 내가 가진 싸구려로는 나를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꽤 오랜 시간 늘 다른 곳을, 지금보다 좀 더 나은 것을 꿈꿨다. 현재의 나에게, 또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장 너한테 있는 걸,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을, 부디 진심을 다해서 아끼고 사랑해 주기를.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니까.

 

"젊은 친구들에게..
악기라는 건, 내가 소리를 내주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끼리도 그렇잖아?
나도 한때는 좋은 악기를 갈망해서 병까지 났었어. 그런데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그냥 물건이야.
마찬가지로, 아무리 싸구려라도,
나를 표현하고 담아낼 여지는 있어.
지금 당장 너한테 있는 걸
진심을 다해서 아끼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15화)
작가의 이전글 41세, 필름 끊긴 다음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