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식사합시다
메뉴개발자 남편을 두었다 하면 맛집에 많이 다닐 것으로 오해들 한다. 사실 남편은 회사 업무시간에 메뉴개발 인사이트를 위한 맛집 나들이를 심심치 않게 하는지라 굳이 집에서 멀고 비싼 식당에 가족과 함께 가지 않았었다. 작년 즈음 남편에게 우연히 질문을 건네기 전까지.
"일 때문에 좋은 데서 잘 먹고 다녀서 좋지?!"
"일 때문에 먹는 건 뭘 먹어도 별로 맛이 없어. 갑자기 속도 안 좋고. 한 번에 몇 군데 돌다보면 그 맛이 그 맛 같고.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다른 이들이 연인과, 가족과, 때로는 로맨틱하게 혼자서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 근사한 식사를 누리는 그 곳에서 남편은 매번 식재료의 조화와 음식의 완성도, 프랜차이즈 메뉴화 가능여부 심지어 재료의 원가까지 생각해 보느라 그 근사함을 못 누린다는 것.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과 먹는 동네 고깃집 불판의 고기 한 점이, 장모님이 해준 김치찜이, 엄마가 해준 반찬이 제일 맛있다는 거다. (아내의 요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결혼 전 '거식'을 심하게 경험했던 나도 식사 기억이 그리 좋지 않은데 남편마저 '일' 때문에 꼭 그런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인 이 세상에서 '잘 먹는 것' 조차 해결이 안 되고 있으니 우리 부부, 뭔가 불쌍하다. 무엇보다 딸 아이에게 즐거운 식사 경험을 풍성히 전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식탁에서 행복한 가정의 아이가 잘 큰다고 어디서 주워들었던 기억이 나버린 것)
그래서 시작된 육셰프와 이너조이의 프로젝트.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아무 생각 말고 맛있고 즐겁게 식사할까요?"
워낙 식욕도 없고 입도 짧은 우리 부부에게 이런 아이디어라니. 현대인의 최신 냉장고들과 달리 무척 작고 소박한 우리집 냉장고, 그 냉장고에도 음식이 차질 않아 시어머님이 혀를 끌끌 차실 정도다. (아이가 평균키보다 높게 자라준 것이 은혜) 이런 우리가 한 달에 한 번 즐거운 식사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한 달에 딱 한 번.
Step 0. 일단 즐거운 식사를 상상하기
Step 1. 이너조이가 맛있는 공간 물색하기
- 식사와 문화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곳 ★
- 유명 맛집 no 우리에게 좋은 곳
- 이너조이가 좋아하는 갤러리 스타일 공간
Step 2. 일정 맞추고 예약하기 (예약 必)
- 육셰프는 월차 내고
- 이너조이는 온라인 활동 멈추고
- 아이 어린이집 보내지 않기
Step 3. 식사의 기쁨을 누리기
- 메뉴 이야기 하지 말고 온전히 음미하기
- 아이와 즐거운 대화 나누기
- 공간의 요소들을 감상하고 누리기
Step 4. 식후, 더 중요한 이야기
- 맛을 평가하며 돈과 시간 아까워하지 않기
- 브런치에 식사의 경험에 대해 기록하기 ★
매달 한 번만 즐겁게 하면 되니 아무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다. 1년 가까이 매달 한 곳씩 좋은 곳들을 구경하면서 문득, 왜 이 좋은 것들을 기록하지 않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건 무조건 기록하고 보는 나인데, 이제서야 남편과 함께 누리는 식사의 경험들이 좋아진 셈이다.
우리는 이제 '다음 달 식사'에 대해 꽤 많이 이야기한다. 식당 주변의 갤러리들을 미리 체크해 그 날의 식후 미술산책 동선을 만들기도 하고, 온라인 메뉴북을 미리 리딩하면서 맛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 공간을 디자인한 이에 대한 인터뷰를 읽기도 하고, 다섯 살 딸 아이가 좋아할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탐색해 보기도 한다.
조금씩 식사의 즐거움이 회복되고 있는 이 황금기에 느긋하게나마 브런치에 기록을 시작해 본다.
브라보, 우리의 먹는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