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침 같은 결혼생활이길
남편은 아침 같은 사람이다. 연애할 때도, 신혼 때도 몰랐다가 결혼 6주년 기념일에 간 여의도 브런치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여의도 뷰를 바라보다 떠오른 생각이다. 아침의 해처럼 명랑하고 밝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침의 공기처럼 신선하다는 뜻도 아니다.
전날 밤 비워둔 부대에 다음 날 아침 새 물을 콸콸 쏟는 듯한 에너지, 자신감 넘치고 자존감이 충만한 사람에게만 있는 그 힘을 가진 사람이다.
여의도 뷰 앞에서
6년의 결혼생활을 회고함
내 평생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게는 없는 그것. 콸콸 쏟아내는 에너지. 지난 6년간 남편은 매일 아침 같이 콸콸 쏟아지는 물처럼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세상에는 돈 잘 버는 사업가니, 월천 번다는 인플루언서니 '쎄고 쎈' 남자 이야기가 허다했지만, 안정적인 직장에 매일 아침 죽어라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 게 내 지난 6년의 평안이었음을 인정한다. 정치와 사업을 전전하며 가계수입의 불안정을 극치로 몰아간 어느 한 남자의 딸, 그 딸의 고백이다.
5주년이었던 작년에도 이곳에서 식사했다. 그때가 언제인가. 살얼음 같은 부동산 규제를 온몸으로 맞으며 결국 내집마련에 성공하고 어떤 세입자가 들어올까 상상하면서 포크에 파스타면을 휘감았었다. 회사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 세상물정 잘 아는 듯한 나이지만 우리의 미래에 관한 대화를 할 때 남편 특유의 차분함과 별일 안 생길 거라는 묵직한 눈빛이 아니라면 난 매번 절망을 끌어안고 사는 여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내가 불안과 절망을 툭 던져 놓으면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다 긍정과 낙관으로 바꾸어 놓는 대화를 해오기를 또 1년. 이제 결혼 6주년. 함께 살 날이 아직 더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다행이라 여겨진다. 이 사람과 아직 주고 받을 것이 많은 사이라는 점이.
크랩 로제와 전복 알리오 올리오의
기막힌 만남
결혼생활 6년의 희노애락을 달래줄 음식으로는 전복알리오올리오파스타와 크랩로제파스타를 선택했다. 메뉴북을 휘리릭 읽어 내려가며 마음이 열리는 메뉴를 선택했을 뿐인데 이 조합은 그야말로 혜자로웠다. 짭쪼롬한 전복알리오올리오파스타와 크리미한 크랩토마토파스타를 먹는 묘미란. 해산물이 위에 올려진 파스타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남편의 고등어파스타를 먹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감탄을 표현하고 싶을 만큼 멋진 음식들이다.
색감 참 고운 게딱지에 파스타면과 방울토마토, 잎채소를 담아 나만의 작은, 새로운 플레이팅을 완성했다. 속살이 적게 나오더라도 어떠한가. 포만감은 파스타면이 담당할지니. 로제소스의 맛도 실로 다양한데 세상의모든아침 로제는 크리미한 느낌이 강하지 않아 내 입맛에는 꼭이었다.
이렇게 해산물 파스타 요리 2종만 먹으며 뷰를 바라보다 문득 묵직한 육류도 생각나고 밥심이 올라오면 스테이크리조또를 주문하면 된다. 얇게 채썬 아스파라거스가 마치 당면 모양으로 올라간 크림스테이크리조또가 테이블 위에 추가되면 이렇게 6주년 결혼기념일의 완전한 식사가 준비된 셈이다.
불과 작년만 해도 아이와 함께 이런 식당에 오면 아이 먹을 것이 많지 않다며 아이 식사를 따로 준비해야 했는데 이제 우리의 식사에 어엿하게 참여할 수 있는 다섯 살 어린이, 내 딸. 두꺼운 스테이크도 크리미한 쌀알도 짭쪼롬한 전복도 부드러운 크랩 속살도 잘 먹는다.
레스토랑에서 이것 저것 잘 먹으면 마지막에 디저트도 먹을 수 있음을 아는 건지, '엄마, 이따가 어떤 케이크 먹어볼까?' 먼저 묻는다. 메뉴북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아직 글자를 못 읽지만 괜히 영어메뉴를 가리키며 '이건 티라미수라는 엄청 달달한 빵이고, 이건 레몬타르트인데 조금 실 수도 있지만 파이랑 같이 먹는 거라 맛있고..' 해준다.
아이가 고른 케이크는 레몬크림이 올라간 파이인데 모양이 깨끗하고 맑은 꽃과 흡사해 매우 아껴먹는 듯 보였다.
"엄마 아빠는 안 먹을께. 안심하고 먹어..."
식후에는 51층 스카이팜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도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 곳, 세상의모든아침. 여의도의 한강과 한강공원을 볼 수 있어서도 좋지만 내가 서울의 고층 뷰를 좋아하는 이유는 도심의 고층 건물들을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아직 자연경치나 풍광보다 인간이 위대해 보이기 위해 애써 만든 건축물이나 예술품들이 더 좋다. 자연은, 오래 보고 있으면 어쩐지 무섭다는 느낌이 더 들기도 하고. (하늘과 바다를 오래 보지 않는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51층 스카이팜이나 둘러보고 가자 했는데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화장실을 보고 너무 예쁘다며 나오지 않는 딸. 덕분에 화장실의 이쪽 저쪽을 보게 되었다. 붉은색 벽과 골드수전, 원목화장대와 타원형 전신거울. 얼마전 미술시간에 공주의방을 꾸며 만든 아이의 눈에 꼭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겠구나.
51층 스카이팜에 올라온 아이는 여기저기 보이는 식물과 화분들을 궁금한 듯 쳐다도 보았다가 저가 생각하기에 예쁜 곳에서는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다른 세계에서 호흡하던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삶을 지켜주며 살아감이 오묘하고 신비한 하늘의 은혜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안되었기에 결혼을 하고, 그렇게 나온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허투루 살 수 없는 지극한 모성이 내 안에 채워지고.
이제 7주년, 8주년, 9주년을 향해 간다.
서로를 더 연민하고 수용하며 베풀 수 있는 부부가 되길 소망하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