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너조이 May 12. 2022

명화야 미술 놀이하자

내 아이 인문학은 미술사 입문부터


명화를 늘상 접하면서
색감과 구도를 눈에 익히고
초등학교에 진학해
또 다시 같은 명화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아이 스케치북에 손대지 마라>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내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줄까, 어떤 세상의 문을 열어줄까, 하는 생각은 모든 엄마가 젖 먹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하는 고민이다. 척추가 휘고 목이 다 굳도록 10개월간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틈나는 대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건강하게 걸어나가 관계 맺고, 무엇을 경험하면 자기와 타인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으며, 어떤 지식을 배워야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 또 드넓은 세상에 던져지는 고통과 상처는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고민이 길지 않았다. 신앙과 인문학이었다.


하나님이 보여주는 세계와 인류가 걸어온 세상 속에서 사유와 통찰을 거듭하면 아이가 자기 자신만의 인생의 결, 그 무늬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물 한 살 느즈막히 신앙과 인문학을 만나 격변의 청년기를 겨우 버틸 수 있었던 나와 달리, 아주 어릴 때부터 그것들이 아이 곁을 지켜주고 있다면 괜찮을 거라 여겨졌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좋은 선물을 준 셈이니 보람도 느낄 수 있을테다.


'어린이 인문학'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탐색하고 공부할 필요도 없이 내가 몰입해 있는 미술이라는 주제 안에서 아이와 인문학적인 소통과 대화를 쌓아 올리자고 생각했다. 인문학의 목적이 자기와 타인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술만큼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것이 없다. 또 다양한 예술 분야 중 미취학 아동들에게 미술놀이만큼 재미있는 분야가 또 있을까. (음악놀이는 학원에서 하자..)


여섯 살 딸 아이의 최애 게임 (명화 스토리텔링)


미술놀이가 거의 불가능했던 3세까지는 부지런히 명화를 접하게 해줬다. 명화를 삽입한 보드북, 퍼즐, 뱃지, 머리핀, 티코스터  등을 집 곳곳에 두어 아이가 자주 만지고 일상 속에서 명화를 만날 수 있도록 신경썼다. 특히 아이들이 지루하다고 여겨질 만한 고전주의나 인상주의 그림을 볼 때는 이야기도 지어주며 그림책 보듯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애썼다. (여섯 살이 된 아이는 지금 보드게임 중 명화 스토리텔링과 명화 숨은그림찾기를 가장 좋아한다. 이건 의도치 않은 효과)


전시회에서만 만나는 큰 액자 속의 그림이 아니라 작은 손 안에 쥘 수도 있고 밥 먹다가도 이야기할 수 있고 머리도 장식할 수 있는 친구 같은 그림이라고 일러주고 싶었다. 억지스럽게 일부러 보여주지 않고 아이와 내가 우연히 함께 명화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그렇게 추억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 평소 눈여겨 보던 국제현대미술교육연구회의 어린이미술사에듀케이터 과정을 수강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미술사의 핵심을 이해하고 미술활동과 함께 미술사를 전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과정이다. 아이들에게 짚어 주어야 할 역사적 배경, 미술사조, 주요개념이나 미술기법에 대해 스스로 교안을 작성하며 해당 역량을 키울 수 있다.   


명화에 눈이 트인 아이와 이제 쉽게 미술사도 전해 주고 미술놀이까지 할 수 있으니 조금씩 어린이 인문학 교육에 다가가는 좋은 기회였다.


아이와 집에서 미술사 놀이를 하면서 아이가 친구들에게도 소개시켜 주고 싶어했던, 또 다시 하고 싶어했던 놀이 세 가지를 골라 적어본다. (아이마다 선호하는 재료가 달라 좋아하는 미술놀이가 다를 수 있다.)


** 아래 세 가지 미술놀이 내용은 국제현대미술교육연구회 어린이미술사에듀케이터 과정의 실기수업을 아이와 함께 한 내용임을 밝혀 둡니다.  






원시미술을 배우며 : 
장 뒤뷔페의 '쿠쿠바자' 가면 만들기
* 연계전시 [Who is the Outsider?]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

아마추어 화가나 순수한 아이들, 정신질환자들이 그린 그림에 매료되어, 가공 없이 원시적이고 본원적인 미술을 아르 브뤼(Art Brut)이라 칭하고 비주류 미술인 아웃사이더 아트에 영향을 미친 프랑스 화가.

진정한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출발한다. - 장 뒤뷔페


무의식 드로잉으로 만든 그림가면 '쿠쿠바자'


비주류 미술을 칭하는 '아르 브뤼' 용어의 창시자, 장 뒤뷔페의 무의식적이고 자유로운 드로잉 기법은 엄마인 나보다 아이에게 아주 큰 즐거움을 줬다.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한 그림을 추구했던 장 뒤뷔페.


그의 그림을 보고 아이는 자기도 의식 없이 '마구', '막' 그리고 싶어했다. 검정, 빨강, 파랑 세 가지 색상만 사용하는 것도 의외로 좋아했다. 색상 선택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드로잉을 하는 아이의 작은 손이 춤을 추는 듯 보였다. 거침 없는 드로잉, 싹둑싹둑 컷팅, 슥슥 풀칠을 마치고 페이퍼백을 뒤집어 쓴 아이는 깔깔 거리며 웃었다. 원시적이고 꾸밈 없는 그림들로 만들어진 장 뒤뷔페의 가면 '쿠쿠바자(coucou bazar)'를 나만의 가면으로 만드는 활동이었다. (쿠쿠바자 퍼포먼스 영상은 아래 참고) 


엄마와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여기저기 보여주고 싶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를 보며, 난 기존의 관습과 교육, 아름다움의 기준 등을 철저하게 거부한 순수한 날 것의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되었다. 내면으로 분출되는 창작 욕구, 무의식적이고 자유로운 곡선 드로잉, 시선을 사로잡으려 애쓰지 않지만 그 자체가 매력인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의 세계에 시선을 두게 된 것이다.    


https://youtu.be/Se-Zn58M794

장 뒤뷔페의 그림가면 '쿠쿠바자' 퍼포먼스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만을 다루는 전문 미술관, 용인의 벗이미술관에도 아이와 다녀왔다. 전통회화에 익숙한 어른들이라면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게 여겨질 콜렉션이지만 아이들의 눈에 벗이미술관의 작품들은 친구처럼 다정하고 어여쁜 존재들일 뿐이다.     



아트 브뤼 벗이미술관 [Who is the Outsider] 전시회






인상주의를 배우며 : 
반 고흐의 방 꾸며주기
* 연계전시 [Van Gogh Inside]


오늘 내 방을 그린 그림을 다시 시작했어. 눈은 아직 아프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바로 이런 소묘야. 30호짜리 캔버스면 될 것 같아. 소박한 내 침실을 그려보는 거야. 색채로 모든 것을 말하는 그림이야.

정여울 <빈센트 나의 빈센트> 中
*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발췌


반 고흐의 방 꾸미기


말문이 트일 듯 말 듯했던 아이가 제일 먼저 발음했던 꽃 이름은 해바라기. 고흐가 자신의 열정과 갈망을 표현했던 만큼 그의 거의 모든 것이 녹아있는 그 해바라기 그림을 보고 난 이후였다. 세 돌 즈음 갔던 반 고흐 전시회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표현한 미디어 아트를 얼마나 오랜 시간 정지 상태로 보던지 우리 부부가 한참을 기다려준 기억이 난다. 그뿐인가. 어린이집 가방에는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뱃지가 있었고 식탁 위에는 역시 같은 그림의 티코스터가 늘상 놓여 있었다. 


아이는 어디서든 고흐 작품이 보이면 '고흐 아저씨'라고 하며 웃음을 보였다. 고흐의 애절한 인생사를 모르는 아이도 고흐의 그림을 이렇게 좋아하니, 고흐는 고흐구나 싶었다.


고흐의 대표작들로 여러 미술놀이를 했지만 그 중 반 고흐의 방을 꾸며주는 놀이를 할 때 아이는 유독 즐거움을 느꼈다. (나도 고흐 앓이를 하는 사람이라 함께 만들었다)


예술가 공동체를 꿈꿨지만 살아 생전 언제나 외로웠던 고흐의 방에 (무척 소중히 여기던) 실바니안 인형의집 소품들을 가지고 와서 티테이블을 만들어 줬다. 거실 커튼의 끝을 뜯어 테이블을 덮었다. 벽은 고흐가 좋아했던 노랑색 종이로 둘러줬다. 르누아르와 마네, 모네와 같은 화가들을 불러 자신의 대표작들을 자신있게 소개해 주는 고흐의 옷은 양복이다.


고흐 이후 더 많은 예술가를 알게 된 아이는 고흐보다 달리를, 프리다를, 호안 미로를, 마그리트를, 더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흐는 아이와 내가 처음으로 나눈 예술가이자 오래도록 사랑할 화가로 남아있을 것이다.    


반 고흐 전시회 / 해바라기 그림 / 아이의 반 고흐 소지품들






초현실주의를 배우며 :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재해석하기
* 연계전시 [Inside Magritte]


그 누구의 설명에도 굴하지 말고 당신이 보기에 현실성이 전혀 없는 세계를 표현했다면 일단 초현실주의에 해당된다. 

허진모 <휴식을 위한 지식> 中


르네 마그리트 그림 재해석하기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현대에 들어 아이디어가 필요한 이들에게 보물창고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의 마법 같이 엉뚱한 환상의 그림들은 많은 기획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는데 그래서인지 일상 자체가 마법이자 환상인 우리 아이들에게 매우 적합한 미술놀이 소재가 될 수 있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재해석하며 자기만의 이상적인 이야기, 꿈을 스캠퍼(SCAMPER) 기법을 활용해 표현하는 놀이를 했다. 


** Scamper 기법이란? **

미국의 교육학자 밥 에벌이 고안한 창의적 사고기법

대체하기 (Substitute) 

조합하기 (Combine)

적용하기 (Adapt)

수정, 확대, 축소하기 (Modify, Magnify, Minify)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Put to other use)

제거하기 (Eliminate)

재배치하기 (Rearrange)


평소에도 그림책 보며 이야기 짓기, 스토리텔링 보드게임, 일기장에 꿈 이야기 적기를 즐기는 아이는 마그리트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사과와 파이프, 구름, 중절모 신사 스티커를 신나게 오려 붙였다. TV에 나왔으면 하는 영화 이야기를 앵두 같은 입술로 쉼 없이 재잘대며 그림을 구성했다. 


중앙이 뻥 구멍난 사과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이미 하늘 그 자체가 되어버린 새 두 마리가 눈송이 닮은 똥을 누고 있다. 중절모 신사가 비처럼 내리는 이 곳에서 집은 땅에 서있지 않고 풍선처럼 둥둥 떠다닌다. TV 속 화면이지만 조금씩 삐져나올 수도 있다고 하며 아이는 즐거워했다. 


화장대 한 켠의 선반에 마그리트의 파이프와 중절모 모양 뱃지가 놓여있고 그의 그림 <연인들> 뱃지가 세워져 있다. 로션을 바를 때마다 뱃지를 보며 르네 마그리트 이름이 길고 헷갈리다며 투덜거리는 아이가 무척 귀엽다. (르누아르와 헷갈려 한다) 새로운 영단어 하나 더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안녕인사동 [인사이드 마그리트] 전시회





아래 열 여섯 편의 작품은,
아이가 다섯 살이던 작년 2021년에,
집에서 함께 놀던 미술사 놀이 사진입니다.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 / 그리스 비너스 / 그리스 암포라
고흐 별이 빛나는 밤 / 세잔 생 빅투아르산 / 벨라스케스 왕녀의 방
몬드리안 데 스타일 / 앙리 마티스 컷아웃 / 피카소 콜라쥬
프리다 칼로 자화상 / 로코코 스타일 / 쿠사마 야요이 호박




2022.05.12

아이의 유년기가 

명화와 함께 기억되길 바랍니다. 

이전 08화 아이의 마음에 걸어 들어온 작품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