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
아름다움이란
어떤 대상의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이
어디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에
따라 그 대상은 다채로운 빛깔로
번지게 된다.
미술관은 이 힘을 극대화해놓은
이상의 공간이다.
- <심미안 수업> 中
다섯 살 무렵, 어느 토요일 아침 아이가 눈을 뜨고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오늘 토요일이지? 오늘은 무슨 미술 보러 가? 전시회 다 보면 당근케잌 사주라. 아니다. 딸기케잌. 산책도 하나?"
아이는 토요일을 엄마, 아빠랑 미술관 가는 날로 여기고 있었고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근사한 디저트를 먹고 길을 걸으며 로드샵의 간판 속 한글을 읽으며 다니는, 그러니까 '다섯 살 일상의 낭만'을 누리는 요일로 기억했다. 오늘 가는 미술관은 조금 멀어서 차도 오래 타야 한다고 하면 '그럼 내가 차에서 자고 있을께.' 해줬다.
내 아이가 이랬기에, 이 세상 모든 미취학 아이들이 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인스타그램 이웃들의 피드에는 온통 미술관 다니는 아이들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아마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연결해준 인연들이리라) 언어에 취약한 아이들은 누구나, 미술 애호가 어른보다도 더 전시회를 즐길 수 있겠구나 했다.
그런데 SNS 바깥에서 만나는 동네의 아는 엄마, 엄마가 된 친구, 큰 아이들을 키우는 육아 선배, 특히 아들 엄마들은 우리 가족의 토요 라이프스타일을 보며 '너희 집만 가능한 거야~ 너희 아이한테만 맞는 방식이지!'라고 했다. 대체로 이런 반응들이었다.
아이가 전시회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걷는다고?
엄마가 작품을 조금은 알아야 데려가는 거지.
우리 아이는 일단 뛰어 다녀서 안 되요.
갈만한 곳 추천해 줘요. 미술관 말고요..
미술관이 너무 멀고 저는 운전을 못해요.
그림책을 자주 보니까 괜찮아요.
아이 미술쪽으로 키우시는 거죠? 저희는 아니라서요.
내 아이 육아 외 다른 집 아이가 뭐하고 노는지, 뭘 배우고 있는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참 무심한 나이기에 지인들이 이런 말을 할 때에도 '그래, 그렇구나.' 하고 별다른 대답 없이 넘기곤 했다. 다른 집 사정도 모르고 '아이 데리고 미술관 가면 너무 좋던데요?' 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어렵던지.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유년기 아이가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관람하는 데 저렇게 많은 장벽이 존재해서야 되겠는가? 대한민국 엄마들의 공통 관심사 엄마표 독서/영어를 떠올리며 이렇게 질문해 본다.
아이가 처음부터 책을 끝까지 주욱 봤나요?
엄마가 영어를 알아야 영어를 가르치나요?
책 볼 때나 영어할 때 가만히 읽는 게 아니라, 놀이로 접근해 주지 않나요?
도서관 멀다고 아이 책 안 보여주나요?
숫자놀이 잘 하니까 영어는 안 해도 되나요?
아이를 미술관 데리고 다니는 것이 독서와 영어에 비해 중요도가 낮으니 비교할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실 나도 할 말이 없다. 이 매거진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이전 글까지 계속 써왔듯, 전시회를 다니고 아티스트를 탐구하고 미술사를 공부한 건 무엇보다 엄마인 날 위해서였으니까. 내 영혼의 미술 여행에 어쩌다 보니 아이도 동행한 것뿐이니까.
그러므로 이 글은, 엄마 자신도 미술을 사랑하고 아이에게 미술을 사랑하는 방식을 전해주고픈 그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엄마들을 향해 있다.
다행히 엄마인 내가 미술에 대해 덕질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도 미술관과 전시회를 사랑하는 아이로 커주어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엄마가 문 열어주는 세계에 대해 늘 환호해 주는 딸 아이에게 감사하다.
전시회에 한 달에 한두 번 겨우 데리고 다녔던 돌 전후 시기에는 아이가 집에서 예술을 순수하게 받아 들이고 기뻐할 수 있도록 했다. 명화음악 전집에 부록으로 있던 명화카드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붙여 두었다.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다 벽에 붙은 그림 앞에 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경이롭게 봤다. 그림을 흉내내기도 했고 아는 사물이 보이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집보다 훨씬 크고 천정도 높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친밀감을 갖도록 애쓴 부분도 있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소재로 한 그림책들을 자주 보여주고 이 곳에서 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세 돌 무렵, <케이트의 명화여행> 소전집 시리즈를 중고로 들여 아이에게 내어줬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봤다. 미술관을 뛰어 다니며 액자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여자 아이 케이트가 꼭 자기 자신 같이 느껴진 모양이었다. 케이트가 한 행동을 미술관에서 따라하고 싶어했고, 그림 속 인물들 표정을 익살스럽게 지어보이기도 했다.
서너 살 때 미술관 나들이가 우리집의 주간 루틴으로 자리잡을 무렵에는, 미술관 가는 날이 행복하고 즐거운 날로 아이에게 인식될 수 있도록 전시회 관람 전후 몇 가지를 꼭 지켰다.
아이의 식사, 배변 컨디션을 평소보다 더 꼼꼼이 챙겼고 전시회를 돌며 허기졌을 아이와 멋진 디저트를 먹으며 우리만의 작은 파티를 가졌다. 미술관 나들이 전에는 옷장 앞에서 옷도 함께 고르며 나들이의 재미 요소를 더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달라 하면 마음껏 보여줬다.
미술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잘 편집해 꾸며놓고 아이에게 보여줄 때 광대가 승천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게 내게는 아주 큰 행복이었다.
★ 추천합니다!
* 크레용하우스, <케이트의 명화여행> (5종)
* 아람북스, 베이비올 명화음악 전집 (36종)
* 계림북스, 첫 명화퍼즐 1, 2 (6조각 2판, 10조각 4판)
미술관을 키즈카페만큼 즐거운 공간으로 느끼게 하는 방법 중 최고는 바로 이것. 오감으로 전시회를 즐기게 하는 것이다. 작품을 소개하는 글귀나 캡션이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 유아들은 그림에 대해 온 몸으로 반응할 수 있다. 미술관에 들어가 그림을 눈으로만 보고 나오게 하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생각되지 않는가?!
아기띠나 유모차에 아이를 앉히고 전시회를 관람하다 두 돌 무렵 세종문화회관 다원예술 프로젝트 [행복이 나를 찾는다] 전시회에서 아이가 인터랙티브 작품을 온 몸으로 즐기는 걸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시각예술가와 서울시무용단, 서울시극단,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의 협업으로 기획된 이 전시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몸으로 예술을 보여주는 작품, 예술에 몸으로 반응하는 아이. 전시회장에서 난 퍼포먼스가 작품인지, 내 아이가 작품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기쁨을 느꼈다.
전시회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의 공간 경험 역시 중요하다.
충남의 당림미술관에서 초여름 바닥화 체험을 할 땐 한 시간 동안 땀을 쏟아내며 자신이 아티스트인 양 바닥에 그림을 그려댔다. 캠핑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태워 직접 만든 목탄으로 미술관 풍경을 바라보며 드로잉을 할 때도 신이 나있었다. 미술관 둘레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던 아트플로깅(Art Flogging) 날, 플라스틱과 환경오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진지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춘천의 이상원미술관에서는 산 위의 보름달 같은 조형물을 보며 강원도의 큰 산을 한동안 쳐다봤다. 독특한 건축구조로 상까지 받았다고 하는 아라리오갤러리의 층계를 이동하며 공간 이동의 스릴을 경험하기도 했다. 예술의전당에 가는 날이면 음악분수 앞 잔디에 아무 말 없이 벌러덩 드러누워 하늘 위 구름을 세었다. 온 가족 멍 때리기 시~~작!
전시회에서 무슨 그림을 봤는지, 미술관에서의 경험은 어떠했는지 몇 개월 뒤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이의 몸이 이 모든 자연과 예술을 기억해 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 추천합니다!
*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 수강
* 오디오 도슨트 기기 활용
* 인터랙티브 작품, 퍼포먼스 체험
* 독특한 구조의 미술관 건물 견학
* 미술관을 둘러싼 자연 풍경 감상
* 미술관 같이 다니는 친구 만들어 주기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면 아이는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어했다. 그림뿐 아니라 돌멩이, 나뭇가지, 냅킨, 연필, 레고, 가베, 음식, 쿠션 등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모든 사물들로 온갖 형상을 만들려 했다. 짧은 시간 휘리릭 만들고서 엄마의 칭찬을 기다리는 그 모습은 내 인생의 끝날까지 잊지 못할 무엇이 되어 버렸다.
그뿐이랴. 에너지가 남달리 솟구쳐 길거리에서 춤도 추고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미술관 사진만 잔뜩 찍고 길거리 춤 사진을 못 찍은 게 한스럽다) 운전하던 남편은 '쟤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애들 아프면 갑자기 팔팔해지기도 하잖아.'라고 할 정도였다.
아이의 인생에 지금처럼 순수하게 예술로 기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시기가 또 있을까?
이렇게 영감에 충만한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엄마로서 좀더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아이의 감성을 훌륭하게 만져줄 이는 진정 엄마뿐이로구나. 인생이란 모름지기 감탄하기 위해 사는 것일진대, 아이가 부디 미적 감각을 부단히 경험하고 훈련해서 자연과 예술 앞에서 감동하며 사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한편으로 나는 왜 아이처럼 예술을 유쾌하게 누리지 못할까 궁금해진다. 진정 삶의 무게 때문일까, 예술을 이해하려 하는 무리한 마음 때문일까, 서른 일곱 평생 써온 색안경들 때문일까. 굳은 마음과 정지된 뇌 때문일까. 아무리 미적 자극을 경험해도 '좋다'는 말 이상의 표현을 못하겠다. (부러운 내 딸, 엄마가 못하는 거 너 다 해!)
★ 추천합니다!
* 전시관람 후 온갖 창작 (아이 주도의)
* 아트샵 굿즈 직접 구입해 보기
* 직접 산 굿즈는 집에 직접 배치하기
* 전시관람에 대해 그림일기 써보기
* 아이의 기쁨에 함께 참여, 감동하기
2017년 8월 태어나 이듬해부터 아이와 내가 하나가 되어가는 이 과정 속에서 마치 포근한 배경이 되어준 미술관. 그리고 올해 아이는 여섯 살이 되었다.
몇 년간의 주말은 미술관에서 보낸 여섯 살 내 아이, 지금 이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놀이는 명화 스토리텔링 혹은 명화 숨은그림찾기다. 예쁘고 재미있는 그림책이 집에 허다하지만 아이의 손이 향하는 곳은 명화카드. 창작책을 보면 마지막 페이지에 더해 자기만의 스토리 덧입히기를 좋아하고, 디즈니 영화를 보고나면 대사와 연기 따라하기를 좋아하는 딸이 명화카드를 손에 쥐었다 하면 꽤 긴 시간 스토리텔링 놀이를 함께 해줘야 한다. 유아 워크북에 있는 숨은그림찾기는 재미없어 하더니 명화 숨은그림찾기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다.
명화를 보면 시대적 배경과 아티스트의 삶, 그림의 면면과 의도를 알고 싶어하는 나와 달리 아이는 '그림을 그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짓는다. 내 품에서 젖을 먹던 아이가 내 앞에서 명화를 말하고 있는 요즘이 꼭 꿈 같다.
아이는 이제 한글을 읽는다. 전시 벽면의 텍스트를 읽을 필요 없이 오직 그림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아이가 오래도록 누렸으면 해서, 사실은 아이에게 한글을 되도록 늦게 가르치고 싶었지만 이게 어찌 엄마의 마음대로 될 일인가. 최근 전시회의 캡션(작품제목과 설명 등) 읽기에 바쁜 아이를 보면서 새롭게 변화할 아이의 감상력이 기대된다.
★ 추천합니다!
* 명화 키워드 학습카드 40
* 보림, <북극곰 퐁퐁이 숨어있는 오르세 미술관 1, 2, 3>
* 보림, <이집트 하마가 숨어있는 루브르 박물관>
어여쁜 푸드스타일링의 멋진 이유식을 차려주지는 못한 엄마였지만, 모던한 감성의 북유럽식 장난감과 교구를 사주지는 못한 엄마였지만, 고가의 출판사 전집이나 프로그램을 구입해 주지 못한 엄마였지만, 그저 그런 엄마였을 뿐이지만 아이와 나 사이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그림들 덕분에 나는 조금씩 나다움을 장착한 엄마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무직의 상태'와 '산후의 초라함'에 대한 우울감을 천천히 덜어내는 엄마일 수 있었다. 아등바등 열심히 살고 대단한 것을 성취하며 살지 않아도 괜찮은, 그 특별하고 소중한 마음도 갖추게 되었다.
무너진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우고 있는 동안 아이는 예술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
예술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발레리나>, <리버댄스>와 같은 영화를 무척 즐기고, 어린이 클래식 음악회를 예약해 달라고 조른다. 유튜브로는 뮤지컬 클립 영상들을 찾아보고 전시회에서 상영된 영상을 찾아 보여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술관에서 마주칠 친구들을 기대한다.
전시회를 데리고 다니는 동안 아이에게 예술을 이해시키려 하거나, 지식을 전해주려한 적은 없었다. 아이가 예술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욕망이나 희망사항도 없었다.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건 단지 '마음'이었다. 단지 '기쁨'이었다.
예술 앞에서 삶을 긍정하는 아이가 되길, 아름다움에 관해 잠시라도 사유하며 사는 일상을 살길, 스스로 좋아하는 것과 가치있는 것을 탐색해 나갈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길, 보이는 것 너머의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깊이있는 눈을 갖길.
아이를 길러온 5년 내내,
내 마음에 새겨있던 단어 하나는,
'심미안 深美眼'이다.
2022.05.20
내 아이가 유년기를 지났을 때면
마음의 미술관 한 채는 지었길 바라며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