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그림이 있어 다행이야
엄마, 나는 아티스트가 될 거야
I'll be an artist!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에서
아이가 방 안에서 명화카드 더미를 가져와 이야기 짓기 놀이를 하자고 조른다. 수학 보드게임은 손사래를 치는 아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보는 명화카드. 이야기를 짓기 전 작은 손으로 명화카드들을 분류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 고요한 그림, 이야기 지을 때 꼭 필요한 그림,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 음침한 그림을 내게 설명해 준다.
여섯 살 중후반을 보내는 아이의 최애 그림은 낭만주의 사조의 그림들이고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와 프리다, 이야기를 지을 때 꼭 포함시키는 그림은 뭉크의 '절규', 엄마를 이야기할 때는 클림트의 그림들을 고른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지어야 한다면 앙리 루소의 숲 그림을 찾고, 열심히 일하는 어른들을 이야기할 때면 밀레의 농부 그림을 찾는다. 예쁜 언니를 이야기할라치면 보티첼리의 비너스 그림을 마치 보너스 카드처럼 옆에 두고 흐뭇해 한다. 이야기를 하다 기분 좋은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는 칸딘스키의 '노랑 빨강 파랑'을 번쩍 들어 올린다.
모딜리아니의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은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이라 했고,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착한 언니,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조금 무섭게 생긴 언니..
카드를 든 작은 손이 현란하게 내 앞에서 움직이고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의 수다를 음악 듣듯 평안히 듣다 보니,
언제 이렇게 컸을까, 이 아이.
아이가 한 뼘 자랐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로서 셀프칭찬을 할 것 같았는데 늘 나의 감사는 한 방향으로 흐른다. 아이와 내가 따로 또 같이 본 수많은 그림들. 아이와 나 사이에 있던 그 그림들, 그리고 그림들 앞에서 각자의 감상을 존중해 주도록, 그 너른 마음을 품는 엄마와 딸이 되도록 해주신 하나님.
그간 이사와 리모델링으로 이 글들을 생각지 못하다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다. 내가 쓴 단어와 문장,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흔들리고 불안한 영혼을 품고 사느라 사계절 내내 마음 한 켠이 춥고 쌀쌀한 나에게도 단단하고 따뜻한 영혼의 계절이 있었다면, 지난 5년이었겠다. 아이와 미술관과 갤러리를 걷고 그림 앞에서 말문을 튼 아이를 껴안았던, 나의 미술관 육아.
출산 3주 후, 젖몸살을 앓으며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성수동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 환청처럼 들었던 말, 예술이 나의 육아를 도와줄 거라고, 예술에 대해 뜨거운 엄마가 되라고. 그 말이 누가 한 말인지도 모르고 마음에 새기고서 이 아름답고 불가사의한 육아의 숲을 걸어온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정성껏 기록해준 지난 봄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사적인 생각과 아이의 사생활을 담는 것 같아 내심 꺼려왔던 기록들을 쏟아내면서 내 안에서 맑고 투명한 마음이 충만하게 차오르는 걸 경험했다.
앞으로 아이는 어떤 그림을 내 앞에 가져와줄까, 나는 또 어떤 글을 쓰게 될까, 모든 것들이 기대와 소망뿐인 앞날에 더 풍성해질 우리가 되길 기도하며.
2022.10.19
조금 늦게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제 의젓한 어린이가 되어있는 딸 아이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