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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Jul 20. 2022

당신은, 집에서 무얼 하고 싶나요

집 꾸미기는 취향과 욕구를 파악하는 일


모름지기 성공적인 집 꾸미기란 금전적 고려가 아니라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인식하는 데 달린 법이다. … 꽃병을 사라. 도자기를 사라. 촛대와 거기에 꽃을 알록달록한 초들을 사는 데 과도한 돈을 사라. … 이 시점에서, 과소비를 진지하게 걱정하라. …

… 집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라. 집 꾸미기는 미학적으로 만족스러운 물건들을 사들이는 일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모호한 요소들, 즉 외로움을 견뎌보겠다고 마음먹는 일, 고독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법을 익혀보겠다고 마음먹는 일과도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라.

-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오늘은 이런 날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제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주절주절. 나의 피로에 대해 읊고 이해받고 공감을 구하고 싶은 날, 그만치 피곤하고 혹 그 피곤함이 나의 강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불쾌한 기분까지 뒤덮인 날. 이건 안돼요, 혹시 이렇게 욕심내도 될까요, 돈이 더 들지만 그 방법이 있었네요, 오오, 제발, 그 옵션만큼은 안됩니다, 이런 류의 말들을 최소 열 차례는 반복한 날. 


이토록 무거운 몸을 노트북 앞으로 이끌어 글을 쓰기는 처음이다. 나의 일기는 늘, 비록 슬픔과 비탄에 잠긴 날일지라도, 몸만큼은 가볍거나 이완된 상태에서 쓰이곤 했다. 이렇게 천근만근 무겁도록 피곤한 상태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건 함께 하고 있는 글친구들, 바로 [**우리들의 글루스] 멤버들 덕분이다. 누구 하나, 내게 글을 써라, 글을 쓰면 좋답니다, 글로 마음을 정화하세요, 이제 일기를 써야합니다, 라고 하지 않지만 [유월엔, 필사]부터 계속 이어져 온 우리 모두의 '문장에 대한 갈망'이 오늘을 쓰게 만든다.


** 우리들의 글루스

판교책방 쓰기써클 '글 쓰는 오늘'의 시즌 5 모임으로 '일상을 글로 풀어내며 삶의 애환을 희망적으로 해석하고 그렇게 살아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 7월 셋째주와 넷째주, 2주에 걸쳐 진행되고 있음.






한 달 뒤의 이사를 앞두고 (턴키 공정이 아닌) 리모델링 공사를 준비 중이다.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는 엄마의 역할에 상당히 몰입되어 있는 지금, 매일 아침 새롭게 생성된 에너지를 몽땅 리모델링 공사 준비에 쓰고 있다. 공간을 기획하고 부분 시공 업체들을 선정, 발주하여 시공 과정을 총감독하며 이후 홈드레싱 과정까지, 이 모든 절차들이 오롯이 '나'라는 사람을 통과하여 '집'이 완성된다. 누구는 예산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지만 예산 못지 않게 중요하게 개입되는 이슈가 '취향'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집에서 무얼 하며 살고 싶습니까, 이 질문에

끝도 없이 답변하는 과정인 셈이다.


당신은, 

혼자(가족과) 있을 때 어떤 사람입니까, 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구글링으로 검색된 수많은 리모델링 포트폴리오를 보아도 정확한 답이 안 나오는 이유다. 이건 '나의 고유성'을 계속 들여다 보는 작업이다. 


자연주의 브런치 메뉴 만드는 일이 늘 신나있는 남편을 두었기에 주방 시공이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동네 사람들을 수없이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피곤한 습관이 있어 손님 접대의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일반 영상도 영화처럼 시청하고 싶은 욕구가 크니 이 또한 거실에 반영되어야겠다. 단순 소파-TV 구조의 거실을 매우 꺼려하니 서재 요소가 적절히 결합되어야 하겠다. 침대와 의류가 한 방에 있는 걸 싫어하니 드레스룸을 따로 기획해야겠다. 아이와 나 모두가 좋아하는 놀이가 레고이니 장난감 없는 우리집에도 레고방이 별도로 있다면 훌륭한 놀이공간이 되겠다. 베란다는 1인소파와 라탄조명으로 프라이빗한 공간을 만들어 자기 방 하나 없어 서러운 남편이 편히 쉬도록 해야겠다. 화장실은 습기와의 전쟁, 반건식을 지향하며 야무지게 샤워부스를 시공해야지 


이렇게 취향을 고려한 설계와 기획을 마치고 오늘 이 분야의 전문인 친구 한 명을 데리고 공사 현장을 나갔다. 나의 취향은 이러저러해서 이 공간을 이렇게 꾸밀 참인데, 현실적인 이야기인지, 혹 비현실적이라면 어떤 이유때문인지를 파악해 가며 타협점을 찾아갔다. 작은 짐 하나 없는 텅빈 집에서 구석구석을 살펴가며 친구와 세 시간 동안 대화했다. 


오늘 난, 

이 대화로 완전히 소진된 상태.  


그렇습니다.

눈앞에 이사갈 집의 평면도 하나를 멍하게 바라보며, 이것이 글이 될지, 산이 될지, 바다가 될지, 의문스러워하며 쓰고 있습니다. 


내일은 각 시공 업체들이 견적을 내주러 출장을 옵니다. '호호홍, 사장님~' 하면서 10만원이라도 더 깎아볼까 애쓰는 날이 될 것입니다.



2022.07.20

집에 관한 대화로

완전히 소진된 날 밤,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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