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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Jul 19. 2022

팬데믹 기간 안전가옥

이사를 준비하며 


개인이 마음껏 '밖'에 나갈 수 없다면, '안'의 공간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더 넓은 집에 대한 선호. 더 머물고 싶은 공간을 위한 인테리어. 밖에서 즐기던 것들을 안으로 들여올 수 있는 모든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질 것이다. … "안전가옥" 편

그렇다면 이 결핍을 무엇이 채워줄 수 있을까? 나는 가끔, 물리적인 이동이 불가능해질수록 우리를 정신적으로 이동시켜주는 콘텐츠가 사랑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니까. "정신적 피난처" 편

- 유병욱, <없던 오늘>



공저로 출간했던 내 책이 처음 세상에 선보인 달이 2020년 1월이었다. 출간 기념 북토크 행사 준비로 공저자 분들과 우왕좌왕 하던 그 달, 구정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할 때 즈음 '우한폐렴'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내가 좀 늦게 인지한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이번 구정 연휴 때 전염성을 우려해 친지 방문을 자제했다고 했다. 사스나 메르스 등의 전염병 사태를 워낙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온지라 세 살 아이 엄마였음에도 무디게 받아들였다. 


이 시국에 대중을 한 자리에 모으는 행사를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과 미안함 속에서 북토크를 준비했다. 20~30여 명이 모였던 북토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린이집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기한을 정하지 않은 휴원 공지였다. 






출간을 하게 되면 바빠진다고 들었는데 가정보육의 늪에 빠져 아주 오랫동안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2020년 상반기는 전 인류가 뉴스를 보며 시국에 대한 비탄에 잠겼다. 그간 환경오염의 주범이 바로 우리 자신이었음을 새삼 느끼며 반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확산이라는 불가항력적인 환경으로 인해 그 취약함이 여실히 드러난 사회구조, 가령, 돌봄과 교육의 사각지대라든지, 정치와 종교 기반의 극심한 갈등과 혐오라든지 하는 것들 때문에 매일 아침 뉴스를 보는 일에 이골이 다 났다. 


그러나 인간은 변화와 적응에 뛰어난 종. 


사회 전체가 팬데믹 상황에 맞게 생존방식을 바꾸기 시작하니, 나 역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삶의 여러 영역에 대해 대폭 수정과 변화를 가해야만 했다. 변화를 거듭할수록 팬데믹이라는 특수 환경이 크게 불편치 않은 것으로 여겨져 그 자체가 씁쓸함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유병욱의 <없던 오늘>을 읽다 보면, 코로나 이후 내 삶에서 달라진 것들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한 달 뒤 새 집으로 이사갈 준비를 하는 때여서인지, 지금 이 집에서 코로나 2~3년의 시간을 보낸 기억이 특별히 다가온다. 


이 집에서 난 그간 무얼 해왔나.


크고 작은 여러 변화들 속에 가장 본질적인 건 미니멀 지향주의로의 변화일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업무나 육아와 같은 일상이 외출 없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니 이전보다 공간을 더욱 가꾸게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인테리어 공사를 일으킬 만큼 공간 구성에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했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병적이다. 


필요 없는 물건이 집안에 버젓이 있는 모습을 견디기 힘들다. 물욕 없는 딸 아이를 키우고 있어 장난감을 일찍 처분하는 일이 수월했다. 작아진 아이의 옷들을 쌓아두는 법 없이 동네 지인들에게 빠르게 나눈다. 1년 동안 서재의 책 200여 권을 중고서점에 팔거나 폐기했다. 안 그래도 단촐했던 화장대의 화장품, 액세서리 등이 거의 모두 정리되었고 TPO에 따른 의상 한 벌씩을 제외한 옷들이 의류수거함으로 들어갔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던 미니멀리즘인지 심플한 살림이라든지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미니멀리즘에 성공한 사람들은 각자 자기다운 살림과 돌봄을 해낸 이들일 것이다. 나도, 꼭 내 마음에 흡족할 만큼, 나의 고유한 생활 양식과 루틴들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놓아 두거나 버렸다. 






단 두세 평이라도 더 넓어진 공간 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의외로 많았다. 단절된 사회와 고립된 환경 속에서 점점 피폐해져 가는 날 지속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옵션들.


무용한 물건들이 나간 자리에 '식물'들이 들어왔다. 화분 역시 누군가에게는 무용하겠으나 홈가드닝으로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하면 소울 아이템이 된다. '여백이 많아진 책장'에는, 차마 버리지 못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서재를 바라보게 된다. 10여 년 전에 읽은 책들을 다시 읽게 된 배경이다. 칼 융의 <기억 꿈 사상>을, 장 그르니에의 <섬>을,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펼쳐 읽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시청하지 않았던 드라마를 좀더 편히 보기 위해 TV도 달리 배치했다. 드라마는 무익한 컨텐츠가 아니라, 드라마 작가의 세계관과 배우의 명품 연기가 만난 문학 콘텐츠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정보육으로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로는 '책'보다 '드라마'더라. 그 외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을 보며 육아나 심리를 배우기도 했다.   


넓어진 공간에서 새롭게 하게 된 또 다른 하나는 '홈트'. 이전에 다니던 필라테스 센터가 코로나로 자주 문을 닫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고퀄리티 운동 영상을 제공하는 홈트 유튜버들과 2년째 호흡을 맞추니 센터 못지 않은 운동이 가능해졌다. 선호하는 운동 영상만 찾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홈트하는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냉정해지려 애쓴다.


업무를 포함한 사이드프로젝트는 모두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집에서 효율적으로 일을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하루에 단 네 시간 정도의 일이지만 고효율을 도모하기 위해 듀얼 모니터와 아이패드를 활용하며 눈높이 수준의 독서대, 커피 중독자를 위한 홈카페 머신이 주인을 위해 열일한다. 컴퓨터 앞에 앉은 엄마를 자주 부르는 아이와 아예 함께 하기 위해 거실 서재화를 이루기도 했다.   




     


한 달 뒤 이사준비랍시고 그나마 남아있는 짐들도 처분하기 시작했다. 경악할 만큼 놀라운 '물건의 세계'다. 코로나가 아니였다면, 더 넓고 안락한 공간을 갈망하는 마음이 크지 않았다면, 여백의 미를 모른다면, 알지 못했을 세계. 


이렇게 치워내도 공간이 작게 느껴진 걸까, 이사갈 집은 지금보다 열 평이나 넓은 집이다. 평수를 넓히는 이사인데도 추가하는 가구 없이 이사하려 매우 신중해진다. 더 안락하고 평화로운 공간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 기능성을 고려한 고가의 리모델링 공사까지 준비하니, '기능적이고 안락한 공간에 대한 나의 집착'이 얼마나 대단한지 공사 예산을 작성하다 스스로 혀를 찼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혹 코로나가 종료되었다 하더라도 이제 인류는 새 전염병의 등장에 점점 익숙해지고 점점 더 안전한 신체적 공간, 정신적 피난처를 지키려 무수한 공을 들일 것이다. 


안전한 공간에서,

정서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여러 양식들을 개발하고 가꾸게 될 것.



2022.07.19

코로나 2년 반의 시간을 함께 한

이 공간을 떠나기 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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