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의 날 돌봐준 커뮤니티
우리의 마음은 휴식과 변화를 원합니다.
… 그리고 행복한 사교 모임에서는 수천 가지 모습의 사랑이 지도적인 정신이 될 것입니다. 방종이나 무례한 행동이 그런 자리에 끼어들 리 만무합니다. 또한 사악한 정신들은 우아함의 근처에서 도망치는 것 같습니다.
- 노발리스, <푸른 꽃>
서른 네 살 끝무렵에 '경이와믿음'을 만났다.
경이와믿음.
Wonder and Belief.
이너조이가 꼭 만나야 하는 커뮤니티인데요, 하고 누군가가 내 앞에서 경이와믿음, 경이와믿음, 경이와믿음, 이렇게 두세 차례 이야기했는데 아직 정체를 모르겠는 커뮤니티 이름, '경이와믿음'을 혼자 발음했던 게 서른 네 살 시월이었고, 경이와믿음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함께 크리스마스 자수 카드를 만들었던 게 그 해 십이월이었다.
시월, 십일월, 십이월. 세 달간 내 정신세계 안에 이 커뮤니티가 녹아든 방식이 꼭 '경이'였고, 이건 내가 경이와믿음 커뮤니티의 교제 방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뮤니티 리더 분이 내게 연락이 와 경이와믿음 커뮤니티 안에서 운영해 보고 싶은 북클럽 주제가 있다면 고민해 보고 그 모임을 진행해 보시라, 그러니까, 이 커뮤니티의 원더가 되어보시라, 했다. 그때만 해도, 이전에 내가 북클럽이나 여러 엄마들 모임을 운영해 본 이력이 있으니 내게 편히 부탁하신 거겠구나, 생각했다.
할 수 있을까요, 했더니,
이너조이가 아니면 누가 하나요,
그럴까요,
그렇죠,
네 그럼.
그렇게 경이와믿음 안에서 <다니엘 플랜>과 <바디 바이블>, <겸손한 뿌리> 리딩을 가이드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건 내게 매우 익숙한 활동으로 조금의 부담도 없이, 꼭 그 모습은 하나님의 일꾼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십분 활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돕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경이롭게 느껴졌다. 모임 하나를 맡아 준비할 때마다, 출산 후 곤두박질치고 있던 나의 신앙, 나의 재능, 나의 창의성, 나의 역량 같은 것들이 긴긴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출산 후 약 3년, '재능'이라는, '창의성'이라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유령 같은 개념들에 진절머리가 나던 때 만난 커뮤니티, 경이와믿음.
모임의 리더가 되기 위해 무엇, 무엇을 이루고 성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금, 여기'에서 제안 가능한 모임을 디자인하고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모아서 나의 최선 아니, '차선' 정도의 편안한 모습으로 모임을 진행해 왔다. (이제 '최선'은 힘듭니다. '차선'이 좋아요.)
아마, 경이와믿음(2019-2020)에서 이터널러너(2021), 판교책방(2022) 커뮤니티에 이르는 삼년의 시간 동안 이 커뮤니티에서 믿음이 회복되고 창작 본능을 일깨운 이들이 여러 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참았습니다. 함부로 부르지 않을께요. 내 애틋한 사람들의 소중한 이름)
경이와믿음 안에서 진행되는 책모임과 글모임은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모임을 운영하는 각 원더의 자질과 역량, 기질에 따라 매우 개성적이면서 고유한 모습으로 실험되어졌다. 모임을 상상하며 '이렇게 해도 될까요?' 하는 것들 중 작게나마 실현 가능한 요소들을 모임 기획에 반영하며, 어쩌면 모임은 예술일 수 있겠어요, 같은 책을 가지고도 이 원더와 저 원더는 전혀 다른 모임을 디자인하고요, 글을 써도 누구는 에세이를 쓰고 누구는 시를 쓰니 글 모임도 다양하고 말이죠.
100명이 모임을 만들면
이 중 같은 모임은 하나도 없을 거에요.
개별성, 고유성, 기질, 역량, 유일성, 창조성, 창조주와 피조물, 같은 개념들을 난 경이와믿음 안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모임들을 나만의 지, 정, 의로 체험하면서 비로소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이 커뮤니티가 기묘한 건, 책 읽고 글 쓰며 만난 사람들이 어디까지 친밀해질 수 있는지 그 깊이를 깨달을 때마다.. 감사기도를 하거나 간증 형식의 글을 쓴다는 것이다. 서로의 만남이, 우리의 연결이, 누구의 섬김이, 감사해서 기도를 하게 되는 커뮤니티.
어떻게 이런 커뮤니티가 가능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개인이 브랜딩에 성공하려면 꼭 커뮤니티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퍼지는 모양이지만, (경이와믿음에 이어) 판교책방이 그런 목표를 가졌다면 이런 경이로움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난 그리 생각한다.
경이와믿음 원더들, 그리고 지금 판교책방의 PM들이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의 소명으로 갖는 가치가 '돌봄'에 있기 때문에. 배움과 성장과 연결이라고 자주 말하곤 했지만 우리, 좀더 생각해 보면, '돌봄' 아니었습니까.
소심한 마음에 눈치 보며 이 곳에 들어오긴 해도, 서로의 깨어짐과 회복의 여정을 글로써 나누고, 우리의 여러 나눔들이 문화, 예술, 신앙이 꽃 피우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공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뚜벅 뚜벅 걸어왔다고, 이제 말할 수 있겠다. 이제야.
수없이 많은 분들이 경이와믿음과 이터널러너, 판교책방 커뮤니티를 오고 가셨을 텐데. 그 분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각자의 고유한 모습으로 보여준 그 수십, 수백가지 사랑의 방식 덕분에, 서른 중반의 날들이 무르익어간다고, 뒤늦게 참 고맙다고 인사드립니다.
2022.07.21
지난 31개월간 날 어르고 달래며 키워 준
커뮤니티를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