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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Sep 30. 2022

살림이 살립니다

지긋지긋함과 평온감 사이


그 후 10년 동안에 1남 4녀의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생활에 열중했고, 행복했다. <현대문학>지를 통해 데뷔한 한말숙이가 가끔 놀러와 살림에만 파묻힌 나에게 더러 자극이 될 말을 해주었으나, 살림 재미에 사로잡히다시피 한 나는 그 밖의 일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 박완서,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달그락 달그락.

칙칙칙칙 -

삐- 이

쏴아 -


신혼여행을 다녀와 신랑이 출근을 하고 신혼집에 덩그라니 혼자 남아 사과를 깍아 먹으려는데 과일포크가 없어 집앞 다이소에 포크를 사러 나갔던 기억이 내게는 있다. 남편 혼자 살던 작은 집에, 그릇 하나, 팬 하나 없던 그 집에 내가 200여 권의 책과 아주 큰 ㄱ자 책상 하나 들고 들어간 것이 우리의 결혼이었다. 결혼은 곧 살림의 시작임을, 어릴 적 소꿉놀이의 실제적 현장임을, 배우지 못하고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다.


손이 곱지 못하고 손재주는 젬병이면서 바깥일은 하지 않고 집에 남아있기로 한 내게 선택지는 '책'과 '살림'이었다. 신혼집 거실 바닥에 앉아 집을 둘러보자면, 독서와 집안일,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발적 퇴사로 이른 백수 아내가 된 내 일상에 책과 살림은 그렇게 깊숙이 뿌리내렸다.






책을 읽으며 한껏 나른해진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세탁실로,

화장실로,

향하면 무슨 일인지 새 힘이 솟았다. 앞으로, 앞으로.


물과 그릇이 부딪쳐 주변부로 튀는 물방울들에서, 전원 버튼을 누르면 시원하게 물을 쏟는 소리를 내는 세탁기에서, 잘 닦이지 않는 흠집들을 온갖 물질들의 화학작용을 활용해 손쉽게 지워내면서, 광을 내며 욕실 청소를 마치고 스퀴저로 벽면과 바닥의 물기를 하수구로 쓱- 밀어내면서, 소복이 쌓인 쓰레기들을 모아 밖으로 내보낼 때, 연구소 생활을 할 때는 좀체 잘 표현되지 않던 나만의 역동성이 한껏 드러났다.


장본 식재료들을 소분하여 냉장실과 냉동실로 착착, 수납되는 풍경 그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 그 하찮해 보이는 상황이 삶과의 긴밀한 연결감을 느끼게 해줬다. 십수 가지 가루들이 각 양념통 안에 단정하게 들어차는 모습도. 한 식구가 식탁에 마주앉아 평범하게 식사를 하는 것에도 이렇게 많은 일들이 따르는구나, 먹는 일은 참으로 경이롭다, 하면서.






책 속 이야기는 종종 광활하고 도전적이기도 해서 날 자극했고 작가들의 세계에 몰입해 있다 보면 불현듯 '나'가 어떤 사람인지 잊기도 했다. 대학원 다니고 (학자금 대출이 얼마야) 연구소 생활했던 (왜 그만 둔거야?) 여자가 아무 것도 안하고 집에서 놀고 있네, 하는 환청과 자발적 모멸로 광적인 우울감이 찾아오던 신혼기였다. (그런데도 일하기가 싫었어요)


지긋지긋해, 정말 지긋지긋해, 지긋지긋하고 지긋지긋, 지긋지긋, 지긋한 살림이라지만 그 지긋지긋함이 내 불안한 일상에는 의외의 평온감을 줬다.


긋긋긋긋.

굿굿굿굿.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나의 삶과 경력, 학업에 대한 불안들을 어찌할 줄 몰라 싱크 앞에 서서 그릇들을 달그락 달그락 씻을 때, 불안이 불현듯 사라지고 갑자기 신명나게 그릇을 씻기며 이 삶도 괜찮다고 혼자 큭큭- 웃어댔다. 마음을 평안히 하는 무채색 수건들을 각 맞추어 접어 수건장에 차곡차곡 넣을 때도 마찬가지. 지금 돌아보니 삼십대의 내 불안을 달래준 건, 와인도, 커피도, 남편도, 아이도 아니었고 그릇 씻기와 수건 개기였나 보다.  


물론 때로는, 남편과 아이가 아침에 제 갈길을 떠난 후 빈 집에 혼자 앉아 살림 목록들을 살펴 보다가 갑자기 거대하게 느껴지는 이 집의 살림 살이에 숨이 턱하고 막힌 적도 있었지만. (살림에는 완성이란 것이 없습디다)


주간의 살림을 잘 해냈을 때 삶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그 찬란한 감정, 눈부신 정돈감을 포기할 수 없어 기어이 몸을 일으켜 오늘의 살림을 해냈다.






이 집에는 남편과 아이가 모르는 나만의 이야기가 넘실 넘실 차고 넘친다. 그들이 이 집을 떠나있는 동안 다양한 종류의 살림을 하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자아들이 날 일으키고 살리는지. 자괴감으로 곤두박질친 마음과 정신을 추스려준 존재도, 바깥 사회와 분리된 불안감에 갑자기 선득해진 마음을 다독여준 장소도, 바로 이 곳, 나만의 살림 가득한 이 집이다.


아이와 남편이 잠들 때, 책상에 앉아 야간 독서를 청해 보지만, 글자가 잘 안 읽히면 주방에 가서 앉아 본다. 등원 준비하는 아이의 아침을 준비하는 일부터 저녁 식사 후 마지막 설거지까지, 나의 성실하고 단정한 하루 일과가 머릿속에 스치고 나서야, '오늘만큼을 잘 살았구나. 이제 편히 자도 된다.'는 내 안의 속삭임이 들린다.


세탁실 불을 딸깍 끄고,

주방과 식탁 등을 끄고,

거실의 간접등과 침실의 스탠드는 켜고,


Zzzzz....


 

2022.09.30

내가 머무는 공간에 대해 씁니다.

'글 쓰는 오늘' 동료들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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