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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Oct 07. 2022

미술관 가는 길

삼청동 길과 조우하다


더불어 요즘 나는 '우리는 누군가와 반드시 두 번 만나는데, 한 번은 서로 같은 나이였을 때, 다른 한 번은 나중에 상대의 나이가 됐을 때 만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가끔은 두 번째 만남이 훨씬 좋기도 하다는 것도.

-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스물 여섯 살 그리고 서른 네 살.

이 나이에 한 번, 저 나이에 한 번, 삼청동을 만났다. 두 번 만났다. 


처음에 만날 때 삼청동은 사나운 곳이었다. 광화문에서부터 삼청공원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대학원 가는 길이었다. 경복궁, 정독도서관, 금융연수원, 총리공관,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삼청동 칼국수, 삼청동에 놀러 온 연인들이 특별한 날 스치는 곳들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봤다. 각종 프로젝트로 인한 분주함과 졸업논문 고민으로 바삐 걷던 길들. 이 길을 매일 몇 년 걷다 보면 난 무엇이 되어 있을까, 한 줌 먼지 같은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생각하면서. 


그 모든 고뇌와 더불어 날 저 세상으로 보내 버렸던 대학원 선배와의 연애 또한 삼청동에서 시작되었다. 학력 콤플렉스에 절어 있던 그의 가학적이고도 폭력적인 언어, 그 언어들이 삼청동 길 위를 걷는 내게 난사되었으므로. 그러므로 그 길은 내게 잔인하고 불완전하고 공허했다.


너 같은 게 어떻게 그 대학에 들어갔냐.. 그 대학 나오면 다들 그렇게 고상한 척 하냐.. 학력 세탁을 하려면 이 교수한테 붙어야 하는데 너가 가서 말을 잘 해봐라..  


습지 같이 축축하고 음험한 길. 논문 쓰고 졸업해서 훨훨 날아올라 사회생활을 해나갈,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상상들을 담아야 할 스물 여섯 청춘에 그 질퍽거리는 늪들을 밟으며 계속 꺼져 들어갔다. 뭔지 모를 것들이 내 안에서 다 꺼졌다.  


검은색 도화지 안의 검은 점처럼 살고 있던 날들에, 삼청동에 있던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내 눈에 보였을 리 없었겠다. 들어가기만 하면 색채와 마티에르의 향연이 펼쳐지는 오아시스 같은 곳들을 모르고 매일 삼청동 길을 걸은 것. 썩은 동아줄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붙들고 걸었던 길.


 




온전한 치유. 


그 후 8년이 지나 삼청동을 다시 걸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 보내고 휴지처럼 가벼워져 날아 오르는 마음을 코앞에 둥둥 띄우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삼청동의 전시회들을 관람하며 놀았다. 8년 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눈에 마음껏 담고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광화문 교보문고와 세종문화회관의 현수막에 쓰인 글자들을 내 귀를 향해 시 낭송하듯 읊어줬다. 


경복궁 담벼락을 지나칠 때 경복궁의 처마, 그 처마를 꼭 한 번은 쳐다봐달라고 주문했던 아이, 첫사랑을 기억한 것도 이 때다. 이쪽에서 한 번, 저쪽에서 한 번, 보면 처마가 달리 보이니 위치를 달리 해서 가만히 서있어 보라고 했던 아이, 아니 그 아이의 영혼을 기억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그 주변의 크고 작은 갤러리들을 오가면서 예술의 향을 맡았다. 코에 착 감기는 예술도 있었고 비리게 느껴져 인상을 찡그리게 한 예술도 있었다. 무언가를 번뜩이게 해준 작품, 엄마로서의 고충을 잠재워준 작품, 용납할 수 없는 누군가를 이해하게 해준 작품, 날 아프게 했던 그와 그녀의 말과 표정들을 씻어준 작품..



https://brunch.co.kr/@innerjoy0923/151



삼청동 길이 그렇게 나의 너른 놀이터, 평화로운 공간, 자유로운 터가 되어갈 무렵, 난 서너 살 된 딸 아이 손을 잡고 이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청춘의 연인과는 칼 휘두르듯 날선 언어들을 주고 받던 그 거리가 더 이상 내게 상처도 어두움도 그 무엇도 아니게 되면서부터. 오히려 나만의 고유한 명랑함을 되찾게 해준 길에서 아이랑 솜사탕도 먹었고, 사진도 찍었다.






스물 여섯에도, 서른 넷에도, 여전히 불안한 미래를 부둥켜 안고 그 길을 걸었지만 삼청동과 처음 만나던 스물 여섯, 그 해에는 사랑과 희망이 없었다. 하지만 삼청동을 두 번째 만났던 서른 넷, 서른 다섯, 서른 여섯, 그리고 서른 일곱 지금까지 나에게는 무엇보다 사랑이, 무엇보다 희망이 삶을 든든히 지탱하고 있다. 내 앞에 온 사랑이 삼청동 길을 걸으며 "엄마를 가장 사랑해."라고 했고, 학력은 개나 주라고 하는 남편ㅡ학력 콤플렉스가 있던 舊남친과 매우 다른 유형의 인간ㅡ이 함께 걸어 주었으니까. 


삼청동이 내게는,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렸다. 


삼청동과의 두 번째 만남이 더 좋다.



2022.10.07

곧잘 나서는 곳을 떠올리며 씁니다.

'글 쓰는 오늘'에서 함께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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