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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Oct 22. 2020

[북리뷰] 일하는 여자들

글쓴이 : 경이와믿음 조안_원더




나답게 사는 멋진 여성들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정상적인 생활을 꾸역꾸역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 어린 입사 동기 하나는 임원까지 하는 것이 목표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야심은커녕 그저 낙오되거나 찍히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 목표 삼고 다녔다.  





남자 선배들이 담배 피러 갈 때 믹스 커피를 타서 줄레줄레 따라나서고, 새벽근무 후에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넙죽넙죽 소주를 받아 마시며 정신력으로 버티다가 결국 집에 가서 기절해도 다음날 또 말끔히 차려 입고 출근 시간 전에 도착해 앉아 있었던 그 때. 그 시절의 나는 나를 똑바로 보거나, 제대로 돌보질 못했다. 삶의 원칙이나 태도 같은 건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었다.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대기업에서 여성으로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생각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크나큰 야심이고 오만 아니었나 싶다. 인정 받고 싶어하는 회사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굴욕을 견디고 건강을 해쳤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야심 들끓는 남성 세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썩은 동아줄이 끊기며 진흙탕에 내동댕이 쳐진 모습과 같았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 스스로를 평가하던 삶이 그렇게 끝난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끝냈다. 





야심이 있는 사람은 본인의 큰 포부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동료까지 망치는 경우가 있다. 야심 없고 뭐 하나 재미있어 하는 게 있는 사람을 뽑았다. 
- p.27



그 때 이후로 나는 야심, 야망과 같은 단어와 담을 쌓고 지냈다. 그것이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꿈이어도 야심이 지나치면 자신과 주위 사람들 모두를 힘들게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야심 대신 자신만의 취향과 몰입 대상을 가진 사람을 채용한다는 백은하 소장의 모습은 현명한 리더답다.  





자신의 영역에서 나름 흔적을 남기며 일해왔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여자



광범위한 기준으로 선정된 <일하는 여자들> 속 인터뷰이 11명은, 모두 남성 위주의 험한 일터에서 꾸준히 일해 오며 터득한 용기와 지혜로 겹겹이 무장된 이들이다. 나 역시 그 가운데 있을 때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는데 한두 해 여러 조직에서 일하면서, 또 가끔은 한발짝 멀리서 바라보면서 조금씩 터득해오고 있는 것 같다.   



롤모델이나 멘토 같은 이름보다는 나는 그냥 나 자신이고 싶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이거나 약자이면 더. 나부터가 그렇게 되어야 그런 세상이 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179





나다움을 지키며 일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 난관을 뚫고 나가는 여성들이 더 많아지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한 때의 나처럼 자신을 완전히 지워 버리고 조직에 충성하는 삶은 개인의 존재감을 바닥까지 무너뜨린다. 나다움이 거세된 개인이 조직사회에서 성공했을 때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삶의 의미도 잃고 허무함만 남아 있을텐데 말이다. 이건 비단 여성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언젠가 헤이조이스의 리더십 전문가 과정에서 정은지 님의 인터뷰 글을 본 적이 있다. 세계 유수 기업의 50~60대 리더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쉽게 변하지 않는 그들의 리더십이 온전히 바뀌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이혼할 때, 둘째는 본인이 암에 걸렸을 때, 셋째는 자식이 반항할 때. 삶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다라서야 나다움을 저버렸던 시간을 후회하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내가 어떻게 더 생각하고 상상하느냐에 따라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넓혀야 한다. 내가 이 결심을 선언함으로써 안 그래도 못 버는 돈을 더 못 벌 수도 있지만 버틸 수 있는 데까진 버텨보는 걸로, 여러 사람들이 내 의지를 이해하고 같이 고민해준다. 
- p.178



그런 의미에서 지이선 극작가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결국 시선의 문제다. 나다운 삶은 세상적인 성공과 거리가 멀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삶이 존재의 이유이고, 날 보내신 이의 뜻이라면, 그리고 그 길에 참여해 주는 동역자들이 있다면 못할 이유가 있을까? 



책 작업이든, 인터뷰를 통한 데이터 축적이든 계속 이어가면서 내 인생의 연구 한 챕터를 살아가고 싶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학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연기, 배우를 어떻게 분석하겠는가. 실패라는 걸 알지만, 궁금하니까 무리해서라도 가보려 한다. 내 인생에 주어진 과제라면 과제일 텐데, 이걸 받아들이기까지 20년이 걸렸으니까 앞으로 20년은 더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이어가고 싶다. 나부터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을 찾아보면서. 
- p.36



“내 밭은 내가 간다”는 백은하 소장에게서 소명을 즐기는 이의 여유가 보인다. 나도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꾸준히 나답게 걸어가고 싶다. 늘 그 분과 동행하면서 말이다.  


@wonder_n_b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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