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미래의 성공한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 그러다 보니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나와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나와는 개별적 실존적 존재가 된다. 그 정도 자연스러워진다는 말이다.
내가 목표한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그 모습에 확신을 부여한다. 그리고 강한 느낌을 갖는다. 나는 이제 그 미래의 나와 만나는 상상을 한다.
현재에서 그와 대화하면서 친하게 지낸다. 객관적 현실은 중요치 않다. 그와의 만남을 지속해야 한다. 내가 목표로 한 모습을 예리하게 상상하고, 확고한 믿음, 생생한 감정유지가 중요하다.
가끔씩 불현듯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 찾아오면, 미래의 내가 그 사건과 생각을 현재에 보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나에게 던져지는 다양한 선택지들에 대해서 선택을 계속하게 되면 결국은 미래의 나와 만나게 된다.
현재의 시간에 존재하는 내가 시간이 흘러 비로소 미래의 내가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미래의 존재와 만나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의 존재상태를 계속 유지시켜주어야 한다. 실존인물이긴 하나, 아직은 에너지 상태로서 물질화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내가 만들어 놓은 미래의 내가 나를 찾아온다. 그 순간은 감격스러울 것이다.
우리가 상상을 예리하게 하고, 높은 파동의 주파수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미래의 나는 목표를 달성한 성공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높은 파동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주파수를 미래의 나의 주파수에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그날이 왔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다른 관점으로 생각도 해본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나는 순간이 임박해 오면, 아마도 그 설렘은 덜하지 않을까 싶다. 하도 자주 봐서 지긋지긋할 수도 있겠다. 매일 그의 모습을 보고 그와 대화를 해왔다면, 그와 만나는 순간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것을 마침 손에 넣은 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에 대한 소중한 감정이 떨어진다. 손에 넣은 것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내 미래를 손에 넣은 듯이 익숙해지도록 반복적이고 의식적인 심상화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퓨처셀프'와 '노잉'에서 강조하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상상하는 것보다는 이미 목표를 달성하리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알고 있다면 아마도 두려움은 틀림없이 사라질 것이다. 의심도 없어진다. 내가 끌어당긴 미래에 익숙해진다면 앎의 단계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