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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어 Jan 15. 2018

KPI, 아 쫌!!(3)

일을 하니까 평가를 하는거지, 평가를 하려고 일을 합니까?

우리 회사 얘기는 아닙니다. 업종 부터가 달라요. 여기는 B2B 서비스 회사, 거기는 B2C 유통회사. 그러니까 지인이 다니는 회사 얘깁니다.


때는 바야흐로 연초라 회사마다 KPI 얘기가 벚꽃처럼 흐드러지고 있을 겁니다. 여기도 그런 회사들 중 하나였죠. 뭔가 제대로 체계가 잡힌 회사였으면 갑자기 성과지표를 들어엎고 새로 만드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 대한민국 회사의 99%는 중소기업이고1) 중소기업의 태반은 아직 만들어져 가는 회사. 그래서 그런 과업이 떨어졌던 겁니다.


"그래, 고민이 뭐요?"


항시 이럴 때만 불러내는 사람인지라 불퉁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가는 말이었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문명사회의 상식은 갑을 먹이사슬로 점철된 빌딩정글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비굴함과 아쉬움이 방어 회에 흩뿌려진 레몬즙의 향기처럼 묻어나는 듯이, 오는 말의 말투는 그렇게 나긋나긋하기만 했습니다.


역시 갑질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되는거라며 약간의 도취감을 느껴도 봤지요. 입가에서부터 슬며시 번지는 웃음기를 꾸욱 눌러 담으려면 다른 무언가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마침 상대방도 자기 말에 집중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고요.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을 주워 담아 정리를 해 봅니다.


□ 현황
  ○ 회사 개요
     - 산업정의 : 고가의 내구재를 판매하는 B2C 유통업
     - 가치사슬 : 완성품 판매와 애프터 세일(수리/수선)로 구성
      · 완성품 판매는 딜러/브로커를 통하는 간접유통과 직영점을 활용하는 직접유통을 모두 활용
      · 애프터 세일은 100% 직영 구조
  ○ 최근 동향
      - 최근 완성품 판매 시장이 위축되면서 애프터 세일 부문의 확대를 기획 중
      - 애프터 세일 부문의 강화를 위해 성과평가와 인센티브 체계 개선을 추진
      · 각 공정에 대한 작업 연구(time and motion study)를 통해 목표 작업 시간을 설정
       · 엔지니어의 공정별 작업 시간을 기록하여 진단 단계에서 설정한 목표 작업시간의 준수를 측정
       · 엔지니어의 목표시간 준수도에 따라 인센티브 차등 지급


"응? 잠깐! 뭘 한다고요?"

 

공정별 작업 시간을 측정한다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그 많은 엔지니어들이 외계인을 부검하는 스컬리 요원처럼 녹음기를 들고 "현재시각 13시 20분. 이제부터 A부분을 수리를 시작한다.... 13시 50분, A부분 수리를 끝냈다. 총 소요시간은 30분이다." 뭐 이런 거라도 한다는 얘긴가요?


"그런게 될 리가 없잖아! 무슨 수로 측정을 할건데?"
"다 방법이 있지~"


회사 얘기를 할 때마다 잊으면 안 되는게 있는데,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에서는 안 되는게 없다는 거라던가요? 세상에 그걸 되게 하기 위해서 시스템 투자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각 엔지니어가 공정별 작업을 시작하고 끝낼때 마다 타임클락을 누르면 자동으로 기록이 들어간다나요? 


이걸 안 하면 인센티브를 못 받는다고 하니 어떻게든 하긴 한다는데, 이때 머릿속을 스치는 한 문장이 있었으니

상유정책(上有政策)이면 하유대책(下有對策)이라. 꼽질은 짧고 가라는 길다. 그러니 그게 잘 돌아갈 리가...


"그런데 그게 잘 안돼."


담배 연기를 내 뿜듯이 한숨을 내 쉬며 말을 내어 놓습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눈 앞에는 터미네이터의 어휘선택 화면인 양 '아니나 다를까', '그러면 그렇지' 등등이 떠오릅니다. 그 문장들을 목구멍 뒤로 꼴깍 넘기면서, 장황하게 이어지는 말을 받아 정리해 봅니다.


  ○ 이슈사항
     - 인센티브 연계에도 불구, 엔지니어의 타임클락 활용도 저조
     - 작업시간 기록의 신뢰도 부족
      · 시스템의 로그를 작하여 임의로 작업시간을 사후 기록하는 행태


"... 당연한 거 아뇨? 아니, 누가 작업하면서 그걸 단위단위 쪼개 갖고 시간 기록을 누르고 있겠냐고."
"그래도 하라면 해야지! 그게 다 평가고 인센티븐데!"
"그래서 개별 작업을 빨리 끝내면 뭐가 좋은데? 고객이 원하는 리드타임은 얼마고, 목표 작업시간은 그 몇 퍼센트나 되는건데? 목표 작업시간 초과하면 리드타임을 얼마나 넘냐고요?"
"...... 몰라."


그러니까 측정을 위한 측정을 했다는 얘깁니다. 애프터 세일즈라는 상품의 판매를 위해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강화하겠다면서, 정작 그 효율화의 목적이 되는 고객 니즈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는 거죠. 교수님은 말씀하셨죠. 효과성을 잊은 효율성은 위험하다고. (보고 계십니까, K대 P 교수님?) 


이 건은 세일즈나 마케팅 차원에서 하는 사업을 공정관리 관점에서 관리하려다 보니 생긴 문제 같습니다. 다르게 보면 관리 시스템이 고도화 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높은 수준의 관리를 하려고 들었던 것이기도 하고요.2) 아무튼 결과는 실패라는 겁니다. 이건 검증 된 사실이에요. 잘 돌아가면 나한테 갖고 왔겠어요?


문제를 하나씩 풀어 보기로 합니다.


"쓰으읍~ 하아아~, 그래서 통상 물건 맡기면 언제 찾아가는데요?"
"아침에 맡겨서 저녁에 찾아가거나... 다음날?"
"그런걸 1~2시간 안에 수리하면 뭐가 좋은건데!"
"...."


□ 진단
   ○ 문제점
      - 현재 사용 중인 관리기법은 회사의 현 관리역량으로는 운용이 불가능
        · 엔지니어의 공정별 작업 시간 측정이 어려움
        · 엔지니어의 행동 통제가 어려움(작업시간 측정을 위한 활동이 작업을 방해) 
      - 공정관리의 목표 수준이 고객의 요구를 초월하여 불필요한 관리 비용을 발생
   ○ 해결방안
       - 고객 관점에서의 공정관리 목표 수준 재 설정
         · 고객이 요구하는 리드타임(최소 4시간 최대 1일)을 공정관리 목표로 설정
       - 측정 단위를 현 회사의 관리역량에 맞도록 완화
         · 공정 단위의 시간 측정은 오히려 효과성을 저해
         · 제품의 입고 - 출고 시간만 측정하더라도 고객이 요구하는 리드타임을 맞출 수 있음


일을 하니까 성과를 측정하는 건데, 측정을 하기 위한 일을 하다 보니까 일도 측정도 다 꼬여버린 상황. 이럴 때 딱 떠오르는 팬시(fancy)한 개념은...


"보쇼, OMTM이라고 들어 봤슈?"3)
"오엠.. 뭐?"
"One Matric That Matter. 정말 중요한 하나의 숫자. KPI의 기본이유."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이 양반아. 이것저것 복잡하게 지표 만들어서 측정한답시고 일하는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그냥 중요한 지표 하나만 가지고 퉁치라는 거지. 그게 오히려 더 낫다는 말씀이라고. 


하지만 이걸 말로 해서 될 것 같으면 세상엔 글이라는게 있을 필요도 없고, 세종대왕님도 눈병이 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몇 자 적어 주기로 했습니다. 


□ 제안
   ○ 애프터 세일즈의 성과평가 및 보상 체계 개선
       -  각 제품에 대한 고객 리드타임 준수율을(납기준수)로 성과를 측정
         · 납기 준수율 = (고객 인도시 - 제품 입고시) ÷ (고객 인도 요청시 - 제품 입고시) × 100
            ※ 시간 단위로 측정 
         · 고객의 만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만 측정하여 효과성 증대
         · 개별 공정에 대한 시간할당은 엔지니어 및 애프터 세일즈 센터 자율로 결정 
       - 상기 성과평가에 따른 보상과 별도로 애프터 세일즈 센터별 처리 물량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 인센티브 총액 = ∑(표준 작업시간 × 작업 수) × 시간 당 인센티브 금액
            ※ "시간"의 단위 및 단위시간 당 인센티브 금액은 별도 연구를 통해 산정
          · 고객 유치 및 업무 효율화(소요시간 단축)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 성과측정 체계의 현실화
       - 기존 공정별 작업시간 측정 제도는 폐지
       - 측정 및 기록하는 지표는 ①제품 입고 일시 및 ②고객 인도 일시로 제한
       


"자, 됐죠? 이제 밥 사!"
"아놔..."
"에헤이~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갑질은 할 수 있을 때 해 놓는 거랬습니다. 





-주석-

1) 2015년 한겨레신문이 소개한 통계자료에서 따왔습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91668.html

2) 마음먹고 투자를 했더라면 이 회사의 방식을 성공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의 제품의 수리나 수선에 하나의 작업 공간을 배정하고, 엔지니어에게 RF 센서를 달아서 작업 공간에 들어간 시간과 나온 시간을 자동으로 기록하면 얼추 작업에 소요된 시간(Man Hour)의 측정이 가능합니다. 돈이 들어서 문제죠. 돈은... 없죠.

3) OMTM에 대한 설명은 인터넷을 검색하시거나, 제가 방금 검색해서 찾은 https://brunch.co.kr/@jade/109 에 가시면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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