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 등장인물 간의 입장차로 인한 갈등을 정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영화일 것이라(이를테면 고로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같은 느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등장인물이 손가락을 자르지 않나, 흑화 하지 않나, 영화가 예상과는 달라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갈등이라는 것의 속성을 더 인상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영화가 아일랜드 내전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극적 전개가 더욱 타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시작부터 콜름은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서서히 거리 두기를 하거나 애초에 정을 주지나 말 것이지 하루아침에 말도 걸지 말라는 콜름이나, 기분 상해서라도 그런 콜름을 무시할 법도 한데 계속해서 질척거리며 말을 거는 파우릭이나 참 징한(?) 인간들이다. 콜름은 음악적 성취를 위해 감정적 안정감이나 교류를 희생하기를 원하고, 파우릭은 그런 것보다 일상의 다정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콜름은 이지적이고 진지한 사람이지만 파우릭은 상식이 부족하고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dull'한 사람이다. 이렇듯 둘 다 가치관과 성향이 너무 다르다. 애초에 둘이 어떻게 친해졌는지조차 의문이다. 갈등이 심화되기 전에 서로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로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로 가까우면 갈등이 생기기 더 쉽다. 정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부딪힘이 있어야 갈등이 생기는데 부딪히려면 가까워야 한다. 서로 타인임을 인정하면 다름도 인정하게 되는데 가까운 사이는 이 다름을 인정하기 어려운 거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 서로에게 개입하려 들면 갈등이 심화되어 나중에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조차 잊어버리는 상황까지 온다. 영화 후반부의 콜름과 파우릭의 상황이 그러하다. (파아국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아일랜드 내전의 상황이 삽입되며 콜름과 파우릭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암시를 준다. 이렇게 보는 게 꼭 정답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알레고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콜름과 파우릭이 서로 형제로 나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형제는 친구보다 더 질긴 연으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갈등의 불가피성과 비극성을 심화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줄거리 그 자체만 보더라도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상이 잘 되지 않아 흥미롭게 보았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