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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통증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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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엘릿 Feb 27. 2022

사실 진짜 아픈 곳은
거기가 아닐지도

감각은 기만적이다

 

       때는 중학교 다니던 시절. 배나 가슴 언저리가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정확한 증상들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아팠던 것 같다. 어디가 아프냐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이 생각난다. 왜 그런 대답을 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시에 아팠던 느낌이 평소 여느 때와는 달랐던 것 같다. 마음이 아픈 일이 있을 때 느꼈던 통증과 비슷하다고 느낀 걸까. 당시 비교적 성숙한 외양을 가지고 있던 중학생이 초등학교 저학년들이나 했을 법한 대답을 했으니 황당했을 법도 한데, 다행히도 그 의사선생님은 친절히 진찰 후 소견을 말씀해 주셨다.


       “ 마음이 아픈 건 아니고요, 장염입니다.”


       허허허. 그 말을 듣고 나도 참 황당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어떻게 장이 아픈데, 마음이 아프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마음이 너무 아프면 창자가 꼬인다고 하던데, 그렇게 마음과 장은 연결이 되어있는 걸까. 나중에 아주 나중에 장 건강과 신경, 정신 건강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정말 그래서 그랬는지는 미지수이다. 


       한 번은 친구들과 뜨거운 날 난지도에서 1일 캠핑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날 이후로 계속 소화가 되지 않았다. 계속 몸살 기운이 있었다. 근 한 달을 그렇게 소화가 안 돼서 힘들 때에는 소화제를 먹고, 몸살 기운에 못 견딜 때에는 타이레놀을 먹었다. 주식은 소화제, 부식은 타이레놀. 너무 괴로워서 소화제를 사러 약국에 갔던 어떤 날은 약사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약사 선생님은 매우 황당해 하셨다. (이쯤 되면 대략 약사 선생님 의사선생님 당황시키기 전문인가.)


        "소화제를 먹고도 체할 수가 있나요?"


결국 부모님께 증상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했더니, 더위를 먹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건 더위 먹은 증상이었다. 생전 처음 더위를 먹어서 몰랐던 것이다. 항상 약을 지어먹는 한의사 선생님께 부탁해서 약을 배달 받았다. 웬걸, 첫 봉지를 데워서 뜯어먹고, 한 달 넘게 내려가지 않던 체기가 한 시간 만에 쭈욱 내려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젠 더위 먹었을 때 몸이 어떻게 아픈지 안다. 

 

이 사건들 외에도 이후에 내가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아팠던 적이 몇 번 있다. 혹은 아파서 병원에 갔지만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을 들으며 돌아온 적도 몇 번 있다. 그런 일들을 가만히 돌아보면 감각이 때론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진짜 아픈 곳은 내가 생각한 그곳이 아니었다. 문제의 원인은 사실 내가 생각한 그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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