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 있는 사람.
난 트렌드를 따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트렌드를 거부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따라가질 못해서 포기한 사람이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속도로 트렌드는 변하고 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말은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말만큼이나 사람들 사이에 자주 오르고 있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세상은 그냥 빠르게 변하는 정도가 아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고, 나는 사람들에게 치이고 넘어져 그대로 주저앉아서 저 멀리 사람들이 휩쓸려 가는 것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다들 어느 방향인지는 알고 가는 걸까?, 정말 원해서 가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트렌드 세터(trend setter)'의 반대말이 있는지 검색해보았다. '트렌더 세터'는 '시대의 풍조나 유행 등을 조사하는 사람, 선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의 반대말은 검색해도 나오질 않고, 대신 유의어를 하나 알게 되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라는 말이다. 관련된 언어로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있는데, '트렌드 세터' 혹은 '퍼스트 무버'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놓으면 그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 혹은 기업을 말한다고 한다. '얼리 어답터'와는 비슷하게 쓰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이렇게 미래를 선도하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읽으려는 노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다. 위와 같은 단어들은 소비자들을 구분하여 보다 정확한 타겟팅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면, 각 사람들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쓸모없거나 유행에 뒤쳐진 것이 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상품을 사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나처럼 트렌드에 무감각한 사람들만 있으면 기업들은 다 망할 것이다. 따라서 타겟팅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구분되어 이름이 붙여질 리 만무하다. 트렌드를 따르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의 니즈 따위는 관심이 없으니, 그들을 지칭할 단어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트렌드 세터에 반대말이 있는지 궁금했던 이유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트렌드를 잘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에 들어있는 무버mover는 움직이는 사람이고, 팔로어follower는 따라가는 사람이면, 이 표현의 반대말은 무엇으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 일화가 생각났다.
수년 전에 개인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저런 주제로 1대 1 상담이 진행되다가, 내 취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마음에 드는 영화를 하나 만나면 보통 몇 주가 넘게 그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고, 때로는 대본을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내가 느낀 점에 공감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일상에서 만나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책 등에 대해서 원하는 만큼 이야기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깊게 이야기했다가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이 있다. 괴짜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심리 상담 선생님께 했더니 선생님은 나를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셨다.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듣지도 못하고, 반응이 느린 내가 그 찰나에 무슨 뜻인지 자세히 물어볼 순발력도 발휘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표현이 나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물러 있는 사람'
이 말은 좋은 뜻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 말은 아니었다. 단어를 고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글을 쓰면서 '움직이는 사람'과 '따라가는 사람'의 반대되는 표현으로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어 아주 만족스럽다.
남들은 쉽게 변화에 적응하는 것 같은데 나는 부동산, 주식, 과학 기술, 법률, 취업, 돈과 같은 실리적인 면에 있어서는 매우 대처가 느리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인간관계, 자본주의, 첨단 기술 문명에는 언제쯤 적응이 되는 걸까. 특히 인간관계는 항상 어렵다. 내가 사람들에게 미움받거나 항상 갈등을 일으키는 편은 아니지만, 잘 상처받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꺼려지고,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싶지가 않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고립되어서 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한다. 싫은 약도 억지로 먹어야 하듯, 자꾸 억지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야 하는 것이다. 심리적 어려움은 각종 상황과 변화에 대한 부적응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나의 부적응은 과연 심리적 어려움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타고나기를 적응하기 힘든 기질인 것인가?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나는 긴장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육아 상담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지능이 부족한 아이에게 부모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 알려줘야 한다는 가르침을 보았다. 그래서 부모는 사회생활에서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장면에서 아이가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 것인지, 어떤 말을 해야 부적절하게 대처하지 않는 것인지, 그래서 어떻게 원만한 대인관계를 누리며 사회에 발을 디딜 것인지를 한 걸음 한 걸음, 천 번 만 번 참을성 있게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성인인 나는 스스로의 부양자로서 나에게 하나하나 사회적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관계, 가족관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상담받으면서 느낀 점, 일기도 쓰면서 생각난 것, 영화 보면서 느낀 점 등을 적으면서,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고, 대처방법도 배우고, 고쳐야 할 것들은 조금씩 고쳐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