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혹은 의존에 대하여
1. 안정 애착 혹은 불안정 애착
MBTI 개념이 수 십 년 간의 혈액형 철학을 대체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다음 주목을 받을 이론이 있다면 애착 이론일 거라고 생각한다. 애착attachment이론은 발달심리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생후 대략 2년 이전의 영아가 주 양육자와 형성하는 안정적 유대감이 이후 아이의 심리 및 사회적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이다. 이후 청소년, 성인이 되어서까지 안정적인 친구관계와 부부관계에 큰 영향을 준다.
애착 이론과 애착 유형에 대한 자세한 개념, 원인, 특징, 해결방안 등은 조금만 검색하면 백과사전이나 칼럼 등을 비롯 다양한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학문적인 접근보다는 애착 이론에 대해 내가 느낀 단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글을 시작하였다. 나는 애착attachment이론의 애착attachment이라는 단어, 'attach'을 관심 있게 보았다. 'attach'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attach US∙GB[əˈtætʃ]
1. 붙이다, 첨부하다 (→detach)
2. (~에) 중요성, 의미, 가치, 무게 등을 두다
3.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들러붙다
Source: Oxford Advanced Learner's English-Korean Dictionary
기본적으로는 '붙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중요성, 의미, 가치, 무게 등을 두다',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들러붙다'라는 세 가지 뜻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각각의 뜻을 애착 이론과 하나하나 맞춰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태아는 태 안에서 탯줄로 엄마에게 연결되어 있고, 비록 태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태아는 나름대로 자유롭게 노니고, 탯줄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태와 양수로 인해 보호를 받으며 안정적인 시기를 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출생 이후에 안정 애착을 형성하여 아이의 마음의 끈을 부모에게 잘 '붙인'다면, 자녀는 부모와 안정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양육자와의 안정 애착이 안전 기지가 되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며, 덕분에 아이는 주변을 탐색하며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처음에는 양육자에게였지만, 그 이후 성장하면서 친구, 연인, 배우자 등에게도 마음을 '붙이'는 것은 당연하고 건강한 현상이며, 그 관계로부터 마음의 양분을 얻고 보호를 받는다. 더 나아가 신체적, 경제적인 양분과 보호까지도 받을 수 있다.
2. 회피형 vs 양가형
불안정 애착에는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회피형avoidant과 양가형ambivalent은 불안정 애착을 대표하는 유형이고, 마지막 유형인 혼란형disorganized은 포함되기도 하고 따로 소개되기도 한다. MBTI의 이론에서 사람들의 성격이 16가지로 정확히 나뉘지 않듯이, 애착 유형으로도 사람들을 4가지 유형으로만 나눠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단지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 참고만 하길 바란다.
내가 본 불안정 애착의 회피형과 양가형은 매우 반대 성향이 강하다. 회피형으로 자라난 성인은 매우 독립적이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을 싫어한다. 거절이나 갈등에 취약하여 숨는 경우도 있다. 한편, 내가 이해한 양가형은 그 반대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기대만큼 연락이 자주 오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애정을 자주 확인받으려 하며, 의존적이고 심하면 집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유형이 연인으로 만나면 파국으로 가기 아주 좋다고 한다. 양가형은 지나치게 의존하고, 회피형은 부담스러워서 도망가고, 그러면 양가형은 더 집착한다.
비교해보면 양가형은 상대에게 마음을 붙이려고 하나, 끈을 매우 짧게 두려고 하는 것 같다. 적당한 거리를 존중해 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회피형은 변화무쌍하고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기 힘든 인간관계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마음의 끈을 붙이려고 하면 도망가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관계로 이리저리 얽히는 게 복잡하고 싫다. 대신에 자기 계발과 취미 등 자신의 능력과 업적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잠깐 정리>
(1) 안정 애착
(2) 불안정 애착 ㄱ. 회피형 (독립적)
ㄴ. 양가형 (의존적)
3. 애착과 의존의 대상을 좀 더 넓고 다양하게 (사람에서부터 무생물까지)
어떤 유형이든 우리의 마음은 어딘가에 붙어있으려고 한다. 어떻게든 사람에게 마음을 붙이려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 마음을 붙이려 하기에는 거절이나 갈등이 두려워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취미나 일이나 그밖에 마음을 붙이려는 사람도 있다. 종교에 관심을 두어 영적인 존재에게 마음을 붙이려는 사람도 있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는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붙일 것이냐에 달려있다. 마음이 어디 붙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마음 둘 곳을 찾는 것이, 우리 몸 둘 곳 찾는 것만큼 중요하다.
앞서 쓴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나처럼 회피형인 사람이 자꾸 자신을 고립하고자 하고, 그게 성공(?)하게 된다면, 망망대해 같은 우주에 나 혼자 떠 있는 것과 같은 존재가 된다. 어느 곳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채 떠도는 우주미아가 되는 것이다. 어려움이 생겨도 도움받을 곳도 없고, 기쁨을 나눌 사람도 없게 된다. 자기 일에만 몰두하지 말아야 하고 균형을 잡아야 할 터.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배워야 할 것이다. 폐도 끼치고, 은혜도 갚고 하면서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
4. 의존의 정도가 지나치면 집착 혹은 의존증이 된다.
우리의 마음이 어딘가 붙어있으려는 경향은 아주 강해서, 절제하기가 매우 힘들다. 차라리 균형이 어렵지,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일이나 공부, 자기 계발에 몰두하면 보통 좋은 일이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지나치게 몰두하면, 심하게 의존하면 중독이 된다. 그래서 '일중독'이라는 말도 있고, '의존증'이라는 말도 있을 것이다.
'관계중독'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다. 나는 우리가 인간관계에만 마음을 쏟으면서 울고 웃기보다는, 자기 계발에도 관심을 두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attach'의 3번 뜻처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에 들러붙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인 그 사람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유동적인 존재이므로, 상대방이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는 일방적인 상실을 당할 수도 있다. 게다가 특정한 사람에게만 의존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상대의 감정과 상황에 휘둘리기 쉬우므로 자존감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활동 및 자기 계발과 취미 생활이 수반된 삶은 자기 효능감을 높여주고, 이는 다채로운 인간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우리 마음은 사람이나 자기 계발 혹은 영적인 존재 등의 비교적 긍정적인 곳에 건강한 수준의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면, 인터넷 게임, 약물, 알코올, 도박 등 비교적 부정적인 것들에 마음을 붙일 수 있다. 청소년들은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잘 공감해 주지 못할 때, 혹은 그 밖의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때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기가 더욱 쉽다고 한다. 마음은 어딘가 붙어있고자 하지만, 건강한 위치에, 적당한 거리의 애착의 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가족과 친구 간에 서로 격려해주면 참 좋겠다.
5. 이야기를 마치며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을 본 지는 십 년도 넘어서 어떤 맥락에서 이 문장이 나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때 적어놓았던 문장이 하나 생각났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나는 프로 부적응러로서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이런 부족한 나를 이해해주고,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문장처럼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받고, 내 마음도 그들에게 붙이고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참고자료:
네이버>지식백과>애착이론
위키백과>애착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