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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엘릿 Jul 25. 2022

내가 숲을 찾는 이유

숲, 숨, 쉼

오늘 아침에도 나는 숲에 왔다. 숲에서는 숨을 잘 쉴 수 있다. 내 고향은 숲이다.




요즘 조깅을 거의 매일 하려고 노력했는데, 요 며칠 동안 같은 공간을 계속 달려서 약간 지루하기도 하고, 비가 많이 온 뒤라 운동장이 너무 질척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운동장 옆에 있는 숲으로 아침 산책을 갔다. 요즘 비가 많이 온 터라 산길도 약간 질척하기는 마친가지였지만, 걷기 좋은 촉촉한 숲길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작은 숲으로 된 공원이 있다. 이름은 단대공원이고, 남한산성 옆이라 그런지 아주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숲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매우 자연스러운 공원이다. 대략 일 년 전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오기로 결정하는 데 이 숲으로 된 공원도 한몫했다. 최근에는 남한산성보다 이 단대공원을 더 열심히 오고 있다. 집에서 더 가깝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산림욕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각종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조깅을 할 수 있는 트랙도 있고, 농구장, 배드민턴장, 운동기구들 등등 거기에다가 옆에는 도서관까지 있어서 금상첨화이다. 옆에 있는 도서관은 수정도서관인데, 내가 가장 자주 가는 도서관이고 즐겨 방문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공원에 가면 산책도 하고, 책도 볼 수 있고, 책 빌려서 집에 오는 길에는 정말 기분이 좋다. 이 공원 옆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주로 축구나 조깅을 하는데, 새벽 5시에 가도 운동장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숲에 간다. 숲은 언제 가도 같은 모습과 같은 날씨가 없고, 항상 다르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좋고, 비 오는 날도 분위기 있다. 내가 가장 숲으로 가기 좋아하는 날은 비가 온 바로 다음 날이다. 숲에는 흙냄새, 풀냄새, 비 냄새 온갖 향기들이 가득하다. 그 향기를 맡다 보면 느끼게 된다. 숲에서 내가 숨 쉬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와 새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누워 있으면....







모기 물린다.






비록 모기는 물리지만, 벤치에 몸을 늘어뜨리고 모기 물리지 않은 채로 한참 누워있을 수 있으면 몸이 편안해진다. 마음도 괜찮아진다. 그래서 숲에 들어가면 나는 괜찮아진다. 편안히 숨을 쉴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숲에 가는 것도 좋지만 혼자 가는 숲도 좋다. 


최근에 정여울 작가의 책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를 읽었다. 이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예찬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소로는 숲에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살며, 끊임없이 글을 썼고, <월든>이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면서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낙엽이 떨어져 호수에 닿는 소리, 자신이 걷는 걸음소리 등을 들으며 무수한 자연의 소리들에 집중했다.


산에 가면 종종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들으며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헬스장이나 운동장에서는 음악의 도움을 받아 운동할 힘을 내기도 하지만, 숲에 가면 조금 다르다. 숲에 가서 조용히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 바람 소리, 눈이 오는 날에는 눈 오는 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인다. 




최근에 가까운 지인과 '고향'에 대해서 토론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 될 수 있는 곳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고향을 떠올리면 언제든 떠나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 고향은 항상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곳이었다. 이제는 그 고향이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을 때, 더 이상 그가 살던 그곳이 아니게 되었을 때, 그는 새롭게 자신의 고향이 되어줄 장소 혹은 사람들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비슷한 입장의 나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와 나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아마 그는 정착할 곳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비유처럼, 그가 나무같이 뿌리내릴 곳이 필요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새와 같이 어딘가 뿌리내리고 정착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런 고향은 필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숲에 가면 충분히 그곳이 고향처럼 편안하고 내가 자연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가도 숲만 있으면 그곳이 내 고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숲에서 나는 숨을 잘 쉴 수 있다. "숨을 쉬다"라는 표현은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면이 있다. 그 안에 "쉬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휴식의 의미를 가진 "쉬다"와 과연 같은 표현일지 조사해보았지만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숲은 나에게 편안한 숨을 주고 그 숨은 나에게 쉼을 준다. 


내가 이전에 썼던 브런치의 글 중에는 "좋은 숨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 글의 마지막에서 나는 이런 말을 썼다. "나는 어디에서 숨 쉬는 게 참 편했던가." 나는 그 정답을 찾았다. 나는 숲에서 가장 숨 쉬는 게 편한 사람이다. 집보다 더 집 같은 곳이 되어주는 좋은 숲이 근처에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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