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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통증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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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엘릿 Feb 27. 2022

고양이는
아픈 것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 마음도 그렇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에는 지금처럼 고양이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고양이의 제스처나 표정 등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은 고양이는 야생동물이라서, 아픈 것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생에서 약점을 보였다가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괜찮아 보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얼마 후에 죽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혹시 아픈 것은 아닌지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양이 "집사"들은 매일 화장실을 치워주면서 고양이가 주기적으로 화장실을 잘 가고 있는지 체크해야 하고, 매일 일정량의 밥을 잘 먹고 있는지 체크해 주면 좋다. 


처음 내 고양이를 키울 때에는 고양이의 언어를 알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만 했다.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화가 난 건지, 편안한 건지, 불안한 건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십 년 넘게 고양이를 키우고, 특히나 한 고양이와 친해지고 나서는 너무나도 서로 소통이 잘 되었다. 십 년이 넘는 경험으로 고양이 얼굴을 보면, 꼬리를 보면, 몸짓을 보면 어떤 기분인 지 알 수 있다.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에서도 너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고양이가 떠난 후에, 마지막에 찍어 놓은 영상들을 보면 그때 많이 아팠구나 하고 더욱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마치 고양이 같다. 내가 아닌 고양이라는 대상과 의사소통하는 것에 배움과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내 마음과 대화하는 것도 배움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화가 난 건지, 편안한 건지, 불안 건지, 잘 알지 못한다. 보통은 자신의 마음과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내 기분이 좋든, 불안하든, 우울하든, 우리는 해야 할 일을 그냥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기계이지, 사람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야생동물 같아서 아픈 것을 잘 드러내지 않나 보다. 마음이 아프다고 쉬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뒤처지고 무시당하고 소속되길 원하는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마음과 소통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다가는 어느 순간에 무너진다. 몸도 무너지고, 마음도 무너진다.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지만 지나서 보면 그때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성숙한 사람은 아주 고요하고 잔잔해서 흔들림 없는 물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억울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너무 잔잔해서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물은 고여있는 물이다. 썩은 물이지. 살아있어 다양한 생물들이 사는 바다는 항상 파도가 치고, 때로는 태풍이 불기도 한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살아있는 마음이 있다. 고양이와 친해지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과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심심하다거나 불안하다고, 그 녀석은 나름의 표현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녀석의 신호와 언어를 잘 알아차려 주어야 한다. 마음의 화장실도 매일 치워줘야 하고, 이 녀석에게 매일 밥도 줘야 한다. 시간을 내서 놀아주고, 애정표현도 해 주어야 한다. 우리 마음은 아픈 것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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