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 연습
'심호흡의 필요'라는 책에 제목만 보고 끌렸던 이유가 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 중 하나.
내가 일을 집중하여 하는 중에는,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 미터 달리기 선수들이 그 십여 초의 경기 중에 숨을 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마라톤 선수들은 호흡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달리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 달리면서 어떻게 숨을 쉬는지 배워본 적이 없다. 아니, 숨을 어떻게 쉬는 건지 아예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체력검사를 하면 오래달리기에서 항상 호흡 조절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그걸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일을 하는 것은 결코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럼 일을 하면서 숨을 어떻게 쉬는지는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
그러고 보니 심리상담을 받던 중 호흡법을 배운 적이 있다. 상담 선생님과 함께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숨을 내쉴 때에는 선생님께서 "괜찮다. 괜찮다...괜찮다.." 라고 말해주셨다. 단지 숨을 쉬며 그 말을 들었을 뿐인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단 한번 알려주셨지만 그 뒤로 나는 생각이 날 때 가끔 혼자서 그렇게 숨쉬기를 했다. 내가 대신 나에게 말해주었다. "괜찮다..괜찮다..괜찮아..." 혼자서 숨을 쉬다가 깨달았던 것일까. 일을 하는 동안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 것은 그 호흡법을 배우고서도 한참 후였다. 숨을 제대로 쉬지 않은 시간은, 제대로 살지 못한 시간들일 것이다. 사는 건 곧 숨을 쉬는 것이니까.
제대로 숨을 쉬지 않으면 몸도 굳고 마음도 굳는다. 한 번은 옆구리 속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까지 한 적 있는데, 몸 안의 근육이 굳어있었을 뿐이었다. 배에 딱딱한 뭔가가 잡히기도 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그 뒤로 문득 내가 숨을 잘 쉬고 있는 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갑자기 이하이의 '한숨'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 가사 내용처럼 가슴과 배가 약간 저릴 때까지 숨을 들이쉬었다가, 안에 남은 게 더 이상 남아있는게 없다고 느낄 때까지 내쉰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는 '은정'이 자신의 감춰진 모습을 발견하고, 흐느껴 우는 장면이 있다. 그 때 나왔던 독백이다.
"내가 존재하는 공간이 내 몸보다 작게 느껴질 때가 있어.
내 몸을 으깨서 그 공간의 크기에 맞추고, 다시 끼워넣는 것처럼 아파.
그렇게 또 그 공간에서 빠듯하게 숨을 쉬고, 그렇게 또 난 버텨야 돼.
널 기억해야 하니까.
참, 뭐, 나쁘다."
<멜로가 체질 9화 중에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나중에 상수와 대화중에는 이런 말을 한다.
은정: 사실..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보육원에서...그...그러니까..숨 쉬는 게 참 편했거든요.
상수: 물어볼 게 있나? 그냥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되는거지.
은정: 그렇구나. 고맙네요.
상수: 뭐가요?
은정: 몰라요. 그냥.
멜로가 체질 15화
은정이는 보육원에서 숨 쉬는 게 참 편하다고 느꼈다. 숨 쉬는 게 편하다고 느껴지는 곳이 어디든 한 곳이라도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게 집이든, 보육원이든, 혹은 어떤 사람 곁이든. 나는 어디에서 숨 쉬는 게 참 편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