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받던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요즘 대학원 수업에서는 소외에 대해서 배우는 중이다. 노동 소외에서 시작된 개념은, 교육 소외라는 개념으로 발전된다. 소외현상은 교육현장에서 다양하게 발생되는데, 한 논문에서 교육소외에 대해서 읽다가 소외의 결과로 일어나는 병리적인 'depersonalization' 증상에 대해서 읽고, 이건 내 이야기인데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관료적인 교육시스템에서 교육 절차는 형식적, 순서 중심, 규칙 중심, 문서 중심, 훈육 중심으로 흘러가고, 교육 속에서 인간은 없고, 절차와 규칙들만 남아서 학생을 인간 실현시키려는 목적은 사라지고, 학생은 로봇화 되고, 교육은 조립생산라인처럼 기계화된다.
학생의 로봇화의 결과로 청소년들과 젊은 청년들이 많이 겪는다고 언급한 depersonalization이란 단어는 가볍게는 몰개성화, 객관화, 비개인화, '비인간화'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데, 병리적인 용어로 넘어가면, 이인증, 주체감 상실의 뜻이 있다. "이인증"이라는 건데, 스스로가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서 분리되어 있거나, 또는 스스로의 관찰자가 되는 듯한 증상을 느끼는 것을 이른다. 스스로가 변화했다고 느끼며, 세상이 막연해지고, 현실감을 상실하며, 유의성을 잃었다고 느낀다. 생각을 조직, 수집, 정리하기가 어려워지며, 두피 등에 감각이상이 나타난다.
나는 비현실감으로부터 시작해서, 감각이상으로 이어졌는데, 이 감각이상은 5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이 논문의 출처와 The Body Keeps the Score 책에서 지금까지 읽은 내용을 종합하면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생기는 증상인 것 같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이인증은 소외와 발병의 원인이 되는 박탈로 이끄는 사회구조세력의 맥락에서 고려된다고 한다.
감각이상과 마비 증상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운동신경이나 근육의 마비가 아니라서, 근육의 움직임에는 어색함이 없다. 단지 두피와 얼굴 전체에 한 겹의 무언가를 씌운 것처럼, 내 피부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증상이 심할 때에는 목과 등까지 그 느낌이 퍼진다. 처음에는 볼과 발꿈치만 그랬는데, 이제는 얼굴 전체, 일부 손가락 끝에도 그렇다. 그래서 볼은 항상 빨갛고, 증상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경계가 보이기도 한다. 병원은 당연히 가봤다. 병원 갔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소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시스템, 형식, 문서, 숫자, 과업 등등 이러한 수단일 뿐인 것들을 중요시 여기다가 그것들이 결국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잊기 쉽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에 스스로를 맞추면서 살다 보면,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나는 20대 초에 차를 운전하는 꿈을 많이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차를 운전하면서 이미 만들어져 놓여있는 그 길에 자신을 맞추느라 애쓰는 것이었다.
나는 나로부터 소외받기 참 쉽다. 학교에서는 교육시스템에 맞추느라 몰개성화를 감당해야 하고, 집에서는 착한 아이로 살아가느라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잊는다.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서 시키는 것을 한다. 사랑받기 위해서 상대에게 맞춰주다가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내가 그린 나의 가족 그림에서 나는 정면을 보지 않고, 가족을 향해 뒤돌아 서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지웠을까.
depersonalization의 뜻 중에서는 주체성 상실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최근에 주체성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몰두해 있었다. 누군가가 만든 문화와 규칙에 순응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주체적으로 살기로 한 것이다. 더 이상 사회 규칙에 비합리적일 정도로 순응하면서 신음하고 싶지 않다. 나를 소외시킬 정도로 남들에게 친절하지 말자. 마지막으로 최근에 즐겨 듣는 폴 킴의 노래를 하나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 안에 어떤 아픔 있는지 무시하고 지냈어 미안해
깊게 생각해봤자지 싶어
그냥 지내보려 했어 사실
......
바쁜 일들 사이에 반가운 얼굴 재밌는 이야기
꽤 살만하다 생각했어
또 맛있는 먹거리와 날 무감각하게 만드는 이 모든 것
근데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나봐
내 안에 여태 숨어 있던 어린 소년이 말을 걸어와
오랜만이야 어렵게 말 거네
사실 그동안 많이 아팠다고
어렵게 어른이 된 지금에 와
옛이야기들을 굳이 꺼내놓는 게
부질없는 일이라며
마주하려 하지 않았던 날 후회해
나 사는 게 바쁘단 핑계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나 봐
나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 봐
- < Dear me > written by Paul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