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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통증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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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엘릿 Mar 13. 2022

얼었던 마음이 녹아서 글이 된다

아파서 글을 쓴다


내 마음이 녹아서 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문득 마음이 녹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게 글의 모습이었을 뿐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서야 비로소, 마음이 얼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위 글은 내가 블로그에 짧게 적어놓았던 메모였다. 이 글에 뭔가 덧붙일 말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관련된 한 일화가 생각났다. 한 드라마 대사가 좋아서 적어 놓았던 적이 있는데, 나랑 친한 한 친구는 그 대사의 내용이 꼭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하였다. 그 대사는 싸이월드에 적어놔서 무지개다리 건너편에 있지만, 내용은 기억한다.


드라마의 그 인물은 농구를 좋아하는데 농구를 하다 보면 땀이 흐르고 자신이 땀을 흘리는 것은 마치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운동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자신이 우는 방식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소중한 그 친구가 운동을 하면서 땀으로 눈물을 날리며 아픔을 날려버린다고 생각했고 마음이 찡했다.




몸에서 눈물을 내보내든, 땀을 내보내든, 우리는 몸에서 무엇인가를 내보내면서 울고 있었다.




카타르시스라는 단어에 대해서 나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어원을 보고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 카타르시스는 사전을 찾아보니 그리스어 catharsis에서 나온 말인데, 문학적인 뜻으로는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일.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이 관객에 미치는 중요 작용의 하나로 든 것'이라고 하였다. 심리학적으로는 '정신 분석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 심리요법에 많이 이용'한다고 하였다. 한국말로 바꾸면 '정화'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cathartic이라는 단어는 '카타르시스의'라는 뜻이 있으면서 동시에 '배변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카타르시스가 '배변'과 관련된 뜻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놀랐던 것이다. 카타르시스의 단어 자체도 우리 몸에서 무엇인가를 내보내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십 수년에 걸쳐서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시기를 보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얼어붙고 경직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나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시기를 보내고, 다행히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되면서,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조금씩 회복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회복의 시기를 맞이할 즈음 나는 내 얼어있던 몸이 녹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몸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있다가 툭툭 깨지며 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녹기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녹으면서 나에게서 글이 넘쳐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회복의 시기 동안 개인적으로 치열하게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나에게는 일기 쓰는 시간이 정화의 시간, 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마다 일기를 썼다. 유치해서 못 보여주는 글들을 썼다기보다는, 가끔 일기를 쓰면서 누군가가 이 일기장을 몰래 보고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수험생일 때에는 공부가 잘 안 될 때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하루는  소중한  다른 어떤 친구가 자신이 곡을 쓰는 것을 나의 글쓰기에 빗대며, "그렇게 우리는 배설을 한다"라고 했다.  말이 내가 카타르시스라는 단어의 어원을 알게 되었을  '띠용'하고 깨달음을 주는   몫했다. 나는 아파서 울기도 하고, 아파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때론 아파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때로는 아픔을 대화로 풀기도 한다. 그런데 절대로 먹으면서 풀지는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하하)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우는 방법을 점점  다양하게 하고 싶다. 배출구를 다양하게 만들면, 압력 밥솥처럼 갑자기 터지는 일이  덜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참고 참다가 터지기 전에, 우리는 다양하고 건강하게 울면서 아픔을 내보내고, 꽁꽁  마음과 몸을 녹일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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