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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Sep 29. 2024

도서관에서 부릅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바야흐로 때는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아마도 이맘때였을 것이다.

내신은  대입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시험이니, 공부에 뜻이 없는 학생들 조차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에 기웃거리게 한다.

오늘 나는 도서관에 온 그들 중 특정 몇몇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작은 도시에서 그들은 몇 다리만 거치면 내 친구 혹은 내 친구의 친구 아들 딸들일지니,

내가 사는 작은 도시의 엄친딸 엄친아들이여

아무개 이모가 쓰는 이 글에 성내거나 노하지 말라.




저녁 8시 무렵이었다.

과외 중인 딸을 기다리기 위해  2시간 동안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

퇴근은 하였으나 우리 도서관을 이용자로 다시 찾았다. 조용히 2층 복도를 지날 때였다.

어? 신문 열람실에 불이 꺼져있는 게 아닌가!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퇴근 후에도 녹봉을 받는 공노비의 책임감은 활활 타올랐다.


불을 켜려고 문을 여는고등학생 남녀 한쌍이 있는 게 아닌가?

불 끄고 신문을? 대자보 글씨도 안 보일 판에 신문의 깨알 글씨가 보인다고?

물증을 잡을 길 없는 나는 전원 스위치를 켜고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장을 날렸다.

"불 켜고 있어야 됩니다~"

 마디였다.

책을 펼쳐도 자꾸 그 애들이  눈에 밟혔다. 딱, 우리 둘째 또래였으니 더더욱 그랬다.

10분 후 나는 다시 2층 신문열람실로 갔다. 역시나 불이 꺼져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부디 아무도 없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나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들이 나온다.

니들이 왜 아직도 거기서 나오는데?

불 끄고 도대체 뭐 한 건데?

불꽃처럼 올라오는 화를 가까스로 누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째려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외모는 누가 봐도 공부만 하는 범생이였다.


그들과는 도서관 마감 때 한 번 더 만났다.

마지막까지 꽁냥꽁냥 할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1m의 거리를 두고 각자 퇴실처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들도 나처럼 주차장으로 향했다. 물론 각자였다,

그리고 부모의 차에 올랐다. 물론 각자였다.

부모의 입장에서 그들의 연애는 완벽한 비밀이었다.


얼마 전이었다. 또 한 쌍의 이팔청춘이 도서관에 출몰했다.

책을 꽂기 위해 서가에 들어갔는데

네 개의 다리가 바닥에 펼쳐져있는 게 아닌가?

허벅지에는 책을 펼쳐 놓고 등은 벽에 기대어 꽁냥 꽁냥 하는 폼이

도서관에 데이트를 하러 온 게 분명했다.

"이용자가 지나가는 공간입니다. 앉아 계시면 안 됩니다"

내 안의 모든 단호함을 끌어모아, 옐로우 카드 한 장을 날렸다.

그러나 이들의 속닥거림은 책상에 앉아서도 계속되었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수학의 공식을 설명하는 건지, 연애의 공식을 설명하는 건지.

결국 몇  차례 주의를 줬더니 스스로 가방을 싸고 달콤하게 나갔다.


지하 휴게실 모퉁이에서, 인기가 덜한 400번대 구석 서가에서

CCTV 사각지대를 직원인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신출귀몰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가수 영탁님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였다.


이팔청춘[ 二八靑春 ]을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열여섯, 봄날 같이 푸르고 젊은 시절.

그 푸른 시절의 사랑은 꽃봉오리처럼 예쁘고 귀한 것이니, 그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나 역시 한창 물이 오른 미모를 뽐내고 있는 고1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다. 걱정이 앞서는 것이 당연하다.

혹자는 그나마 도서관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연애하는 그들 정도면 매우 건전한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도서관에 간  딸이 아들이 언제나 대견하고 기특한 부모의 심정을, 공부는 하는데 성적이 안 오르는 원인이 비싼 학원을 못 보내줘서는 아닐까 속 끓이는 부모의 심정을 헤어린다면 그 또한  배신이고 배반이다.

 

그러므로 나는 작은 도시의 이팔청춘들이 도서관에서는 공부만 집중하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정말 딱 3년만 참아주기를 호소한다.


오늘도 도서관에는 열공을 위해 모인 이팔청춘들도 가득하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에 넘쳐나도록 풀고 채점하고 지우고 다시 고쳐쓰는 학생들

친구랑 이어폰 한 쪽씩 나눠 꽂고 희희낙낙 거리는 학생들

국어 문제집을 펴놓고 눈은 스마트폰에 빠진 학생들

그리고, 지금 이 열람실에서 가장 민폐 이용자인 꽁냥꽁냥 커플 한 쌍!

지금 니네 나한테 딱 걸렸거든! 엘로우 카드 한 장, 두 장일 땐 알지?

엄마한테 이른다. 알고보면 니네 엄마의 친구의 친구거든.


속시원한 마무리로 가수 영탁 님의 노래나 개사해볼까 한다. 

도서관 직원이 아닌 아무개 이모로서 그간 애가 탔던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아본다.


        니들이 왜 거기서 나와


                                 by 꼰대 포도송이


엄마 : 어디야?

딸: 도서관이야. 숙제가 많아서 늦게 가려고.

엄마 : 아 그래? 맛난 거 사주려고 했더니 공부할 게 많나 보네 언능 공부해

딸 : OO


근데! 니가!

니들이 왜 거기서 나와

니들이 왜 팔짱끼고 나와


공부한다 하기에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그래 너 그래 너 야 니들

니들 왜 같이 나와.


 지금 시험기간

엄마는 파트타임  알바시간

불 켜진 도서관

무심코 지나는데


뭐 하는데

도서관에서 뭐 하는데


니들이 왜 기서 나와

니들이 왜 팔짱을 끼고 나와


내 딸을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그래 너 그래 너 야 니들

이래선 대학 못 간다.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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