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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n 11. 2024

태어나보니 할아버지가 이준석

'이준석'은 나의 친애하는 친할아버지.  태어나보니, 내 할아버지는 이준석이었다. 오해는 마시라, 유명 젊은 정치인과는 동명이인일 뿐이다.  첫 손녀딸이 너무나도 애틋한 나머지, 일제 징용 가셨던 시절 좋아하던 일본 주인집 딸이름 '코'(子)를 한국식으로 따서 지으셨다. 103년 전, 본인은 정작 이준석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작명받아 놓고, 21세기를 살아갈 손녀딸의 미래 따윈 안중에도 없는 작명을 하시다니!


소심한 복수로 할아버지 스토리로 오늘의 브런치를 채워볼까 한다.


이준석 할아버지는 평생 우리 집 대통령으로 살다,  주차요원으로 가신 분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카리스마를 가지셨기에 손주들의 성장에 중요한 결정을 함께 하셨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친구 따라 교회도 가고 교회오빠도 보러 가던 시절. 헌금 오백 원이 필요했다. 우리 집 큰 물주는 할아버지였다.

"뭐? 하나님을 믿는다고? 차라리 이 할아비를 믿어라!"

 하나님을 믿으면 헌금을 갖다 바치지만,  할아버지를 믿으면 너에게 용돈을 바치겠다고 그 당시 꽤 설득력 있게 내 발목을 묶으셨다.


대학교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KFC(당시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라 불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할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했다. KFC가 뭐 파는 곳이냐고 물으셔서 설명하기 쉽게 빵도 팔고, 튀긴 닭도  파는  곳이라고 했다.

"뭐? 네가 닭집에서 일한다고? "  

닭집 아니라 KFC라고 몇 번을 말해도 내 손녀딸이 닭집에서 일하는 꼴은 절대 못 본다며  내게 용돈을 줄 테니 공부나 하라고 하셨다.


 첫 직장에 입사했다. 할아버지는 어떤 회사에 취업했냐고 물었다. 광고회사에 입사했다고 했다. 신문이나 TV에 광고 문구를 만드는 회사라고 설명했지만 이해가 잘 안 되시는 모양이다.

"뭐? 간판집에 취업했다고?"

  결국 길거리 광고 간판집에 취업한 줄 아시고는 얼굴이 일그러지셨다. 손녀딸의 인생을 책임질만한 능력이 없었기에 집에서 놀다가 시집이나 가라는 말씀은 못하셨다.


  결혼을 하고,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러 자주 친정집에 갔다. 직립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마지막 무렵이다. 할아버지를 인근 정형외과 주차장에 내려드리고 후진해서 나올 참이었다. 손녀딸과 증손녀가 타고 온 차가 안전하게 후진할 수 있도록 아픈 허리를 이끌고 차도까지 나와 '오라이'를 외쳤다.

"오라이 오라이"

 그렇게 할아버지는 우리 집 대통령에서 주차요원이 되셨다.


 할아버지는 내게 촌스런 이름을 주신 분. 어쩌면 내 인생의 첫출발. 큰 상을 받고, 장학금을 받고,  착한 남편감을 데리고 올 때면 내가 잘 되는 것이 본인의 작명 덕분이라며, 그 공을 본인의 작명 센스에 돌리셨던 분.

살면서 개명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OO서, OO은, OO정~ 그냥 요즘 이름처럼 바꿔보고 싶은 이름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때마다 들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뭐? 이름을 바꾸겠다고" 

 이만큼 사는 것도 이 할아비가 지어 준 이름 덕이라고 고래고래 야단치실 것만 같다. 내가 후진하는 순간에도, 내 뒤를 봐주셨던 할아버지. 앞으로 계속 내 인생이 조금씩 뒤로 밀릴 때마다 저 세상 어딘가에서 '오라이'를 외치실 것 같다.




태어나보니 할아버지가 이준석! 그래서 난 이만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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