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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n 16. 2024

좋은 '점', 나쁜 '점', 이상한 '점'

나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점 하나가 있다. 태어날 때는  샤프심으로 콕 하나 찍힌 점이었으나, 성인이 되어서는 가로 0.6cm, 세로 0.9cm 크기로 자랐다. 점의 위치는 팔목으로부터 14cm , 팔꿈치로부터는 5cm 아래에 위치. 그 점이 거느리는 위성점들도 무수히 많이 생겨났다.


오늘 나는 그 점의 일생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점은 좋은 점으로 태어나 나쁜 점이 되었다가 지금은 이상한 점이 되어버렸다.


 먼저, 좋은 '점',  그것은 내 사주팔자에서 이미 나와있다. 내 나이 8살쯤, 엄마와 할머니가 신년운수를 보러 갔다  내 사주를 넣었더니,

"얘는 태어날 때부터 몸에 점이나 상처가 있었을 텐데"

"어머 어머 맞아요, 맞아"

 엄마와 할머니의 기절초풍 리액션에 확신한 점쟁이는 그 점이 없었다면 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라고 했단다. 어쨌든 그 무시무시한 점괘 덕분에, 내 팔뚝점은 내 인생을 보살피는 좋은 점으로 낙점되었다. 절대 빼지 말아야 할 인생점이 된 셈이다.


성장기 시절,  그 점은 내게 나쁜 '점'이었다. 긴팔에서 반팔 옷으로 갈아입을 6월부터 점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새 학년이 되고 5월 말까지 학급에서 나의 이미지는 그럭저럭 공부 잘하고, 새침하고 얌전한 소녀였다. 그러나 반팔의 계절이 되면, 나는 팔뚝에 파리만 한 점이 있는 점순이가 되어 놀림감이 되었다.

'점에 살색 반창고를 붙이고 다닐까?'

'칼로 살짝살짝 긁어볼까?'

고민은 진심이었다. 급기야 칼로 점을 자해하는 시도까지 했으나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금방 멈추고 말았다.  어쩔수 없이 나는 그 나쁜 점을 숙명처럼 안고 가야만 했다.


그 점이 이상한 '점'이 된 것은 40대를 막 지나 서다. 한약을 잘못 먹은 탓인지, 유전 탓인지 새치가 빨리, 많이 자랐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입덧도 남산만 한 배도 아닌, 염색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머리의 새치도 버거웠던 그때, 그 점에서 흰 털 한 올을 발견했다.  일반 피부에 있는 털과 다르게 그냥 놔두면 1cm 정도로 자랐다. 만일, 내 팔뚝이 망망대해라면 검은 대륙 위에 흰 깃발을 꼽혀있는 형국이랄까? 더 이상한 것은 내 마음인지라, 그 흰 털을 뽑으면 괴력을 잃은 삼손이라도 될 것 같아, 검은 점 위에 흰 털을 신성시했다.  


 점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남들에게는 좀 시시한 점 이야기일지 몰라도 내게는 엄청난 고해성사이다.  


좋은 '점', 나쁜 '점', 이상한 '점'. 앞으로 이 점이 어떤 점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가끔, 피부에 있는 점들이 피부암이 된 거나, 점인지 암인지 구별해야 한다는 식의 기사들을 읽게 되면  지금이라도 이 점을 빼야 하나? 검사라도 받아봐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결론은 늘 같다.  51년간 일심동체로 살아온 이 점을 어떻게 버리랴.  이쯤 되면 운명이다.

                            

 여름이면 점보다 뱃살이 더 고민된 지 오래다. 고작 점 하나로 끙끙 앓았던 그 시절이 그리울 뿐. 큰 걱정, 자잘한 걱정이 내  점들의 수만큼 박혀있는 요즘,  자꾸 동생이 용한 타로점집을 알았다며 점을 보러 가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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