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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n 20. 2024

신혼부부의 '들들' 볶는 밤

우리 부부의 이야기이다. 한때 우리도 신혼부부였던 때가 있었다. 들깨처럼 들들 볶았던 밤이 있었다.


남편은 26살에 결혼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한 살 누나의 꾐에 빠져 결혼한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연로하신 시아버님 소원이 하루라도 빨리 막내외아들 장가보내기였기에 남편의 취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아니 선결혼확정, 후취업에 가까웠다. 게다가 시댁과의 합가로 신혼을 보냈으니 꾐에 빠진 건 내 쪽.


어쨌거나 그때의 우리 부부는 너무 젊었었다. 게다가 26살, 신입사원, 새신랑의 밤의 세계는 얼마나 다채롭고 신비했을까?


그날도 '들들' 볶는 밤이었다.


새벽 2시가 넘었다. 남편은 들어오지 않았다. 퇴근이 늦는 직장인지라 2차가 끝나는 시간은 늘 2시 얹저리였다.  12시가 넘으면 슬슬 화가 나서 귀가 재촉 전화를 했지만, 막상 집에 들어오면 안심도 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날도 많이 마셨나 보다. 속이 부대끼는지 새벽 5시쯤 깨서 물을 찾았다.


신혼은 신혼인지라 꿀물을 타주기 위해 주방에 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며칠 전 시어머니가 밑바닥이 보이는 꿀병에 물을 타서 페트병에 담아놓으신 걸 기억했다. 시원한 꿀물을 한 대접 담아, 남편에게 가져다줬다.  쟁반에 담아, 매우 극진하게.


오~ 나의 허니가 진짜 속이 부대끼는 모양이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꿀대접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윽~ 

어억~

예상치 못한 리액션이다.

이거~ 이거~


들기름이었다.

꿀물이 담긴 페트병과 들기름이 담긴 페트병이 바뀐 모양이다. 고의가 아니었다. 진짜 꿀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일부러 복수하기 위해 들기름을 갖다 준거라고 했다. 진짜 억울했다. 숙취의 고통을 어찌 내가 모르겠는가, 설마 나의 허니에게 허니 대신 들기름을 먹였겠는가, 나 역시 비몽사몽 한 새벽이었고, 마침 들기름은 꿀물 옆에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노르끼리한 들기름이나 노르끼리한 아카시아꿀은 정말 비슷했다.


어쨌거나 그날 나의 허니의 위장은 새벽까지 들들 볶여야 했다. 나 역시, 일부러 먹였다는 들기름 음모론으로 며칠 밤을 들들 볶여야 했다. 우리도 한때는 신혼부부,  들들 볶는 밤이 있었다.


 


  

25년이 지났다. 모처럼 남편의 회식, 새벽 2시 30분에 현관문 번호키 소리가 난다. 화가 났던 마음이 안심으로 바뀐다. 들어와 줘서 고마운 감정은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신혼 때처럼 자다 일어나 꿀물을 타 줄 마음은 없다. 설핏, 들기름으로 한 사발 먹인 사건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들기름이 아깝다. 그거 찐 국산이었다. 게다가 직접 농사까지 지은.



*함께 읽어주시면 더 재밌습니다.


중년부부의 애'쓰는' 밤

https://brunch.co.kr/@innin/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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