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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l 03. 2024

인생은 고추장돼지고기찌개처럼

남편과 닮은 음식을 끓이며 문득 생각난 생각

치지지지직 치지지지직 칙칙~

기차소리가 아닙니다. 전동열차 소리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집 전기밥통에서 뜸 들일 때 나는 소리입니다.


예약한 전기밥솥 추가 기적소리를 내며 몸을 흔든다. 요란하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네가 정녕 일어나지 않을 테야? 시어머니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내 아들 아침밥 굶긴 적 없다는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물려주신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온천물이라도 뽀글뽀글 샘솟는 일이 생길지도.


모처럼 휴무에도 남편의 아침밥을 위해 기상한다. 열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오늘 아침은 돼지고기고추장찌개. 우리 남편의 최애 반찬이다. 뭐 해 먹지? 물으면 남편은 가볍게 그냥 고추장 찌개나 끓여달라고 한다. 집에 있는 호박이랑 양파 대충 썰고, 냉장고에 있는 돼지고기 대충 볶아서 고추장 대충 풀어 끓이면 되는 거 아냐?  그런 소릴 한다. 재수 없지 않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고추장 찌개는 정말 간단한 요리이다.


순식간에 고추장돼지고기 찌개가 끓고 있다.  끓이면서 내내 남편 생각을 했다. 오늘따라 이 고추장돼지고기 찌개가 우리 남편을 꼭 닮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선 주 재료가 돼지! 돼지인 게 닮았다. 작년에 한창 다이어트로 살을 빼더니, 요즘은 다시 살이 쪄 간다. 본인도 인정하는 바이다. 다이어트할 때는 초밥집 가서도 밥을  빼서 먹는 기인이 되었다.  '이 옷이 이제 크네' 하면서 헐거운 와이셔츠를 벗어젖히던 남편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정확히 일 년 후, 다시 시도 때도 없이 고기를 찾는다. 특히 돼지고기를... 참고로 어제저녁 메뉴는 돼지고기 두루치기였다.


무엇보다 간편한 조리법이 남편의 인생관이랑 꼭 닮았다. 남편 말대로 돼지고기는 냉장고에 있고, 호박 양파 대충 썰어 넣으면 된다.  어차피 정성스럽게 썰어봤자 찌게 안에서 끓고 나면 모양 빠지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은 인생을 꽤 단순하게 사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단순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타인의 말과 언행에 어떤 음모도 어떤 목적도 발견하려 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담백하다. 나와 딸과의 중재에서도.


"여보, 방금 쟤 나한테 말대꾸하는 거 들었어?"

"그냥 자식은 손님이라잖아. 잘 대접해서 보내래"

남편 말을 듣다 보면, 붙같이 치솟던 화가 좀 가라앉는다. 자식을 손님이라고 생각해 본다. 손님에게 화를 낼 수 없으니, 융숭하게 대접하고 언젠가는 내보내리라 마음먹는다.


고추장돼지고기 찌개는 약불에 좀 오래 끓여야 맛있다. 이건 우리 집만의 맛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맛은 호박은 흐물흐물 무르고, 빛깔은 돼지비계로 윤이 나고, 국물은 고추장이 좀 걸쭉해져야 한다. 남편과 24년 살다 보니, 뭐 곰국까지 아니지만, 제법 걸쭉한 맛이 나는 사람이다. 50년쯤 더 살다 보면 그때는 곰국과 닮아있을까? 어쨌거나 편의점 도시락 같은 사람은 아님에 틀림없다. 돼지로 한 방 먹였으니, 걸쭉함으로 달래주는 건, 나만의 남편 조리법이다.


어쨌거나 속 시끄러운 인생이 우리 남편 닮은 돼지고기 고추장 찌개처럼 단순했으면 좋겠다. 너무 복잡하지 않게, 적당한 재료에 적당히 넣어, 적당히 끓이면 뭐 어떤가?


맛만 좋으면 됐지.


나무 수저로 살짝 간을 본다. 그냥 밍밍한 게, 맛있지가 않다. 양파를 좀 더 넣어야 했나 보다.

맛은 고치면 된다던 시어머니의 단순한 요리비법이 떠오른다. 살짝 정말 살짝, 티스푼 끝이 달랑 말랑 미원을 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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