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송이 Jun 03. 2024

철학관에서 밝혀 낸 외할머니 DNA

  철학관을 찾아갔다. 두 번째 방문이다. 첫 번째는 몇 해 전 시월의 마지막 날, 친구와 추억팔이로 낄낄거리며 걷다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인사동 골목길의 철학관에 불쑥 들어갔다. '난 거짓말은 못해요'라고 쓰여있는 중년 아저씨의 인상처럼 사주풀이도 참으로 정직하였다. 확 끌리는 한 방은 없었지만, 그 아저씨의 예언대로 남편은 부장까지는 달게 되었다.  이번에는 남편의 직장 운은 62세까지 열려있고, 그 이후로는 세월 가는 대로 편하게 사는 팔자란다. 중요한 건 나의 직장운이 70세라니, 와이프가 70살까지 돈 벌어오는 팔자야 말로 정말 좋은 사주가 아니던가.


  이번 사주풀이에서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내 사주가 외가, 특히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친할머니도 아니고, 외할머니라? 어릴 때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내 마음속의 조부모는 친가 쪽이 훨씬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외할머니에게 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방학 때만 찾아오는 손님'같은 존재였을 것 같다. 나를 이뻐하셨지만, 나를 애달프게 사랑했던 것 같지는 않은, 용돈은 쥐어주셨지만, 재산 한몫을 떼어주니 줄 것 같지 않는 존재였다. 친손주와 외손주는 너무나 다른 존재였다.


 외할머니를 말하자면 담배를 빼놓을 수 없다. 담백한 두유만큼이나 담배를 무척 좋아하셨다. 우리가 올 때쯤이면 버스정류장 앞에서 담배 한 대를 담백하게 피우고 계셨다. 길거리에서도 당당히 담배 피우는 시골 외할머니의 모습이 서울 보수적인 손녀딸의 눈에는 불량 할머니 정도로 느껴졌다. 어린 시절 내 기준으로는 외할머니는 음식을 잘 못하시는 분이었다. 미원을 무척 싫어하셨다. 미원을 넣지 않고 간을 한 외갓집의 음식은 늘 맛이 없었다. 미원을 맛깔스럽게 버무린 우리 집 음식이 그리웠다. 그 당시 외갓집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던 것은 미원이 필요 없는 계란프라이와 김이었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일찌감치 부엌살림은 맏딸인 우리 엄마에게 맡기고 논일과 밭일에 전념한 살림에는 젬병인 워킹맘이었다. 앙칼진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조용히 있다가도 찢어질듯한 높은음으로 짜증을 가끔 내신 분이었다. 이모와 삼촌들에게 쏟아지는 찢어질 듯한 잔소리를 듣다 보면, 엄마가 아니라 외할머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외할머니의 혈액형은 AB형이었다. 그것은 한참 혈액형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학교 시절, 우리 집 혈액형 가계도를 그리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외할머니댁 식구들은 모두 AB형이었다. 그러나 AB형을 물려받은 건, 나의 형제자매 중 내가 유일했다.  혈액형으로 치면 외할머니의 계보를 이은 유일한 외손녀라고 가정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의 이종사촌들의 혈액형까지 조사한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의 주머니는 늘 두둑했다. 용돈을 주면 흡족하게 주셨다. 기껏 만원도 황송하다고 생각되던 나이에 초록초록한 만 원짜리를 두 장, 어느 날은 세장이나 주신 분은 외할머니가 유일했다. 주머니 사정만큼이나 뱃살이 제법 있으신 분이었다. 그걸 안 것은 안타깝게도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이었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쓰러지신 외할머니 면회를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들어갔다. 우리 모두는 의식이 없는 할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열했다. 그런 와중에 불쑥 던진 간호사의 말.. 글쎄 외할머니가 생각보다 뱃살이 있으셔서 기저귀가 큰 게 필요하다고 것이다. 외할머니는 새까맣고 왜소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동안 우리에게 철저히 감춰왔던 몸빼 바지 속 뱃살이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비밀이 밝혀지고야 말았다.

  

 이렇게 따져보니, 혈액형,  몸뚱이 중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 뱃살, 집살림보다는 바깥일을 좋아하는 성향까지 내 삶의 많은 부분들이 외할머니와 닮아있긴 한 것 같다. 극과 극을 오고 간다는 AB형들의 변덕맞은 성격은 대대손손 피를 타고 내려와, 욱하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야 만다. 음식은 또 어떠한가? 우리 딸이 7살에 누군가가 엄마가 해준 요리 중 뭐가 제일 맛있어? 물으면 계란프라이요라고 답하지 않았던가? 중환자실에서야 밝혀졌던 외할머니의 뱃살 못지않은 내 뱃살 역시 펑퍼짐한 옷들에 가려 그럭저럭 감추며 살아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외할머니와 내 삶이 맞닿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자식이다. 외할머니도 나도 평생 품고 살아갈 자식이 있었다. 다만  외할머니는 사지육신 멀쩡하지만 사고를 치고 다니던 큰아들이라면, 나는 머리보다는 마음이 너무 예뻐서 내가 평생 품을 수밖에 없는 우리 큰 딸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사실 그 철학관은 그날이 마지막 방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사주에서 외할머니를 찾아낸, 나의 DNA가 온전히 친탁인 줄만 알고 살아온 나를 외탁으로 바로 잡아 준 그 철학관이 이야말로 방금 신 내린 처녀보살보다도 대통령을 예언한다는 어떤 점집보다도 용하디 용한 나만의 철학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08화 햇반 예찬, 햇빛 예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