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송이 Jun 24. 2024

내가 '자유의 여신상'을 받을 상인가

우리 딸이 올해도 상을 받았다.  

우등상? 개근상? 모범상? 교과우수상? 글쓰기대회상? 그림 그리기상?

그런 평범한 상이 아니다.

이름하여 '자유의 여신상'

딸이 다니는 장애인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서는 매년 장애인의 날에 상을 준다. 올해는 '자유의 여신상'을 받아왔다.


상장의 내용은 이러하다


귀하는 평소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센터 내 즐거움을 주었기에
성인주간보호센터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므로
제44회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이에 표창합니다.


역시,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

꼴찌에게 우등상을, 결석을 밥먹 듯하는 자에게 개근상을 줄 수 없듯이

앞뒤 꽉 막힌 영혼에게는 자유의 여신상을 줄 수 없지 않은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김연아, 박태환 선수에게 남다른 성장 서사가 있었듯

자유로운 여신상을 받은 우리 딸에게도 남다른 성장 서사가 있었다.

남들보다 1년을 늦게 걷기 시작했지만, 늦은 만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온 방을 돌아다니며, 꺼내고 찢고 버리고 집중력은 1초. 살찔 틈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리를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당시 다니던 특수학교 담임 선생님은 ADHD약을 먹으라고 권하셨다.

먹이고 싶지는 않았으나, 학교선생님이 권하시는지라 당시는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신과 처방은 어렵지 않았다. 달의 적응기간 동안은 매주 약을 타러 병원에 갔고,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해 의사와 상담했다. 의사는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지만,


너무나도 큰 부작용이 있었다.

아이는 호기심에 찬 눈빛을 잃었다. 사물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자유로움을 잃었다.

얻은 것이라면, 착석이 좀 늘어난 것뿐인데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놈의 착석이 뭐라고, 아이의 영혼을 꽁꽁 묶어놓는 것 같았다.

마침 대학병원 교수님과 다른 문제로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ADHD약이 간질을 억제하는 수치를 억제할 수 있다고 하셨다. 끊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ADHD약을 똑 끊었다.

얼마 후 우리 딸은 다시 자유로워졌다. 방방마다, 구석구석, 세상은 온통 호기심 천국

질문과 웃음이 많아졌다. 물론 혹여, 다칠세라 가족들의 걱정도 많아졌다. 아쉬움은 있다. 착석 시간이  좀 더 길어졌더라면, 지금보다 학습 능력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어쨌거나,

그 덕인지, 사주팔자 덕인지 우리 딸의 관상은 딱 봐도 '자유로운 여신상'이다.

눈빛은 해맑고,  코는 세상의 온갖 냄새에 열려있고, 입은 크고 작은 소식으로 쉴 새 없다.

(참고로, 작년에 받은 상은 '온 동네 소문상'이었다.)


그러고보니, 김연아와  박태환 선수와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 평생 연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장애인 연금. 물론 그들처럼 상에 대한 연금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랑스러운 '자유의 여신상' 덕에 그날 우리 집은 잔칫날, 부상 메뉴는 치킨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단한 글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