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스토리는 '똥'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위장 활동이 활발한 식전 30분과 식후 30분 사이의 구독을 경고합니다.
4년 전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코로나가 정점을 찍었던 때였다. 그 당시 도서관은 모두 휴관 상태였고, 비대면 대출만 겨우 할 때였다. 당연히 외부인이 화장실 사용을 하지 못할 때였다. 혹시라도 화장실 문의가 있을 시, 10m 떨어져 있는 행정복지센터의 화장실을 안내하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 해 나는 공공기관에 첫 발을 디딘 48세의 신입 공무직. 모든 업무 방식은 위에서 내려준 매뉴얼대로 움직이던 때였다. 게다가 나는 도서관 무경력자였던 지라, 그야말로 도서관에서의 이등병 시절이었다. 군기는 충만하고, 융통성은 제로였던 시절이었다.
오전 11시쯤으로 기억된다. 뱃속에서 반가운 신호가 왔다. 불 꺼진 로비를 지나 쾌한 마음으로 화장실로 걸어갔다.
'쾅쾅쾅'
다급히 도서관 문을 두드리는 남자분이 보였다. 아무리 급한 길을 가고 있다고 하나, 프로다운 미소를 장착하고 다가갔다. 그는 화장실을 가고 싶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나는 죄송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행정복지센터 화장실을 이용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드렸다. 지침에 따른 완벽한 응대였다. 대부분은 '허' '참' 같은 불쾌한 감탄사를 내뱉긴 하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행정복지센터 화장실로 간다.
이번에는 달랐다. 나의 친절한 응대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럼 여기서 똥을 싸란 말이냐며 화를 내셨다. 순간 문을 열어줘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허나, 외부인에게 화장실 이용을 허한 동료가 팀장님께 주의를 받던 모습이 떠올랐다. 똑같은 내용으로 한번 더 안내했다. 민원인의 목소리 톤이 한층 더 올라갔다. 그럼 내가 여기서 똥을 싸냐며 고압호스에서 터져 나오는 물줄기 같은 고함을 쏟아냈다. 완전히 나는 쫄았다. 이럴 때는 사무실에 도움을 받는 게 상책이다 싶었다.
"똥이라니!"
해결사 팀장님이 나오신다. 이미 화가 날 때로 난 민원인은 왜 화장실을 이용 못하게 하느냐고 화를 내셨다. 그런데 팀장님도 매우 원칙적인 분이었나보다. 차라리 열어주셨으면 좋으련만, 어디서 똥을 싼다는 말을 하시냐며 물러섬이 없으셨다. 일이 점점 커지는 순간이었다. 민원인이 잠시 사라졌지만 이는 종결이 아닌 휴전일뿐이었다. 다시 찾아온 민원인과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3라운드, 윗선까지 민원이 올라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도 자꾸 똥을 싸겠다며 화를 내는 민원인이 보였다, 사라졌다. 며칠 후 팀장님이 나에게 경위서를 쓰라고 하셨다. 그냥 최초 목격자로서 있는 그대로 사건만 서술하면 된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다.
쓰라면 써야지.
공공기관만 처음이지 나름 회사 경력 23년 차. 부장까지 달고 나온 내가 무결점 직장인까진 아닐지라도 경위서를 써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나의 첫 경위서가 '똥'이 될 줄은 몰랐다. 자존감은 두루마리 휴지 마지막 한 칸처럼 똑 떨어졌다. 남은 건 휴지심처럼 텅텅 빈 자책감뿐.
하필, 나는 그때 왜 똥이 마려웠을까?
똥병상련 민원인의 간절함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그깟 지침이 뭐라고 그냥 열어줬다면?
때늦은 후회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왕년에 보도자료 좀 써 본 선수답게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 경위를 밝히는데 최선을 다했다.
오전 11시쯤 도서관 로비에서 어쩌고~
외부인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해서 어쩌고~
똥을 싸란 말이냐고 해서 어쩌고~
똥을 여기서 싸시면 안돼요 어쩌고~
똥을 쌀 수밖에 없는데 어쩌고~
이후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공공기관의 말단 공무직이기 때문에 그런 고급 정보까지 공유되지 않는다. 나의 매뉴얼 대응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몰래 열어줬는데, 그분이 코로나 환자여서, 동선이라도 공개된다면 그때는 경위서가 아니라 시말서를 썼을지 모를 일이다.
4년이 지났다. 코로나 격동기를 지나, 굳게 닫혀 있던 화장실에도 개화기가 찾아왔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렸다.
도서관이라고 교양만 쌓기 위한 위해 찾아오는 곳은 아니다. 도서관에서 마음의 양식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뱃속에 들어가는 진짜 양식을 먹는 휴게실이라는 공간도 있다. 그래서 먹고 싸는 공간이기도 하다. 밥이 곧 똥이라고 했던가, 밥이 우리의 구불구불한 내장기관을 통과하면 곧 똥이 된다. 밥에는 가격이 매겨지지만, 어차피 똥은 다 같은 똥이다. 그런 공평함이라는 내재된 가치는 공공기관이 민원인을 대하는 데 있어 공평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철학과도 맞닿아 보인다. 똥병상련을 겪은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동료가 똥 관련 전화를 받았다. 밤 9시쯤 똥을 누러 화장실에 갔다가 핸드폰을 빠트렸는데...(중간 생략) 결국은 변기에서 건진 핸드폰 케이스를 찾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민원에 대처했지만, 결국은 찾을 수 없음을 통보해야 했다.
똥은 공평하다. 민원의 소리에도 높고 낮음이 없다. 경위야 어떻게 됐든, 똥으로 휘말린 나의 인생 첫 경위서스토리를 이만 마쳐볼까 한다. 혹여라도, 똥이라는 단어가 많이 불쾌하셨다면, 댓글 민원을 제기하셔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