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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l 29. 2024

도서관에서 딸의 마음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마음갈피를 꼭 찾아드리고 싶은 마음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하신 조여름 작가님의  '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의 책 제목을 심각하게 오역하자면 중년에 나는 그냥 '작은 봉급 생활자'가 되었다. 도서관 공무직 월급은 수당까지 포함해서 200만 원 남짓, 직전 회사에서 내가 받았던 월급과는 비할바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업무를 즐겁게 향유하는 이유는 나만이 챙기는 알짜배기 수당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챙긴 수당 하나를 브런치 글감으로 내놓을까 한다.



잃어버린 엽서 주인을 찾습니다.

가로 10cm,  세로 17cm,
앞면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세 그루
뒷면은 엄마 생일 전날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잃어버린 엽서의 주인은 데스크에 별도 문의 부탁드립니다


7월 초, 나는 엽서 하나를 주웠다. 수십 권의 반납된 책 사이에서 떨어진 거라 주인을 알 수는 없었다.  사실 책 사이에 낀, 책갈피가 도서와 함께 반납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며칠 전에도 책갈피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르신 지하철 교통카드'를 발견하여 찾아드렸다. 물론 주인미상의 책갈피를 모두 찾아드리지는 못한다. 중요성을 따져 그냥 폐기시키느냐, 분실물 보관함으로 가느냐를 판단한다. 도서관 내부 별도 규정은 없다. 담당자 본연의 판단이다.


어쩔 수 없이 검열자가 되는 시간이 왔다. 폐기물이냐, 분실물 보관함이냐 중요한 갈림길에 선 순간이다.


이성의 뇌가 발휘되어야 할 순간,

어 어 이건?

우리 딸이 나에게 쓴 엽서가 아니던가? 할 정도로

엽서 내용의 흐름과  어휘들이 딸의 편지와 DNA 몇 개는 일치할 정도로 똑 닮아 있었다.


지난 3월 내 생일날, 나는 딸에게서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받아보는 편지였다. 초등학교 때는 툭하면 메모지에다 '엄마 사랑해'라고 써서 주곤 했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편지는커녕 자체 발광하는 지랄만 안 떨면 다행이다 싶었다.  둘째는 중학교 3년 동안  '반항'이라는 기본 옵션을 장착한 아주 평범한 사춘기를 겪었다. 내게는 30년 같은 3년이었다. 엄마의 생일에도 케이크 커팅식에나 나타나 축하송만 벙긋벙긋하다가, 홀라당 케이크만 먹고 사라졌다. 그런 아이가 내게 봉투에 현금 5만 원을 넣어 편지를 준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내가 사춘기를 겪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
엄마 말이 맞는 말인 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엄마 말을 듣기 싫었던 그때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었어
(중략)
고등학생 때는 엄마 마음을 이해하는 딸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손목 많이 아프면, 좀 쉬었다 일해요. 아프지 마요.
사랑해요. 엄마
 
                                                                                   엄마를 사랑하는 둘째 딸 올림


주인미상의 엽서 뒷면에도 엄마의 생일에 쓴 딸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1 단계 - 자기반성, 2 단계 - 해명, 3 단계- 앞으로의 관계 개선을 위한 다짐, 각오, 결심, 4단계 -하트 뿅뿅 

이러한 4단계로 이어지는 글의 흐름 또한 비슷하니 어쩌면 가장 정형화된 딸이 엄마에게 쓰는 편지라 할 수 있다.


그래도 편지 덕분인지, 5만 원의 힘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모녀 사이에 급진적인 화해무드가 조성되었다. 나는 눈물을 흘렸고, 딸은 유난히 큰 목소리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물론 이런 애틋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정확히 9시간, 그중 7시간이 잠자는 시간이었으니 실제 애틋했던 시간은 고작 2시간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너저분한 이불과 옷껍데기 허물에 우리 모녀는 평상시처럼 맹렬히 부딪쳤다.


그러나 나는 맹렬히 부딪히는 순간, 입에서 더 험한 것들이 나오려는 순간,  딸에게 받았던 편지를 생각했다. 딸이 편지를 쓰던 순간을 생각했다. 편지를 쓰고 있던 순간만큼은 엄마를 사랑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한 자 한 자에 진심을 다했을 것이다. 종이 한 장은 진심을 증명하기에 너무 작기도 하고 너무 크기도 했을 것이다.  


편지를 읽던 그 순간, 엄마인 나의 마음은 더 애틋했었다. 그래도 나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은 있었나 보네,  치, 내 말이 들리긴 들렸었나 보네, 에구, 엄마가 아픈 건 마음 아픈가 보네...  그런 이유로 나의 눈물샘은 터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매일 증명해 보일 수 없지만, 가끔 이런 사소한 엽서는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다. 오늘 내가 주은 책갈피는 그냥 책갈피가 아니라는 것을.

편지를 쓴 딸의 마음과 편지를 읽는 엄마 마음이 포개어진, 사이에 낀 "마음갈피'라는 것을.

나에게도 딸의 편지는 나의 '마음갈피'였다. 가끔씩 딸의 마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갈피.

그래서 나는  이 '마음갈피'를 잃어버린 이용자를 찾아 돌려주고 싶었다.


동료들과 상의해서 도서관 대출 반납 데스크 앞에  떡하니 공고를 붙였다. 이성의 뇌가 아닌 감성의 뇌가 내린 결정이다. 사적인 감정을 담았다고는 하나, 도서관 이용자를 위한 것이니, 이런 우리의 이런 사사로운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딱 3주, 아니 4주만 붙여놓을 계획이다. 대출 연기, 7일 연체까지 감안하더라도 4주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의 기간이다. 그리고 엽서를 잃어버렸다고 알아채기에도 충분한 엄마의 시간이다. 물론, 본인이 엽서 주인이라고 하는 이용자가 나타나더라도 그냥 수는 없다. 퀴즈를 내도록 하겠다. 딸이 생일 선물, 엽서에 적힌 그것이 바로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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