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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n 30. 2020

비전공자의 글쓰기 루틴


‘글감이 떠오르면 일단 단어를 적어놓고 여유가 되면 문장을 만들어 둔다’가 요즘 내 글쓰기의 시작이다. 문장이 문단이 되면 문단을 확장시켜 가며 글쓰기에 열을 올린다. 글감-문장-문단-확장 단계를 거쳐 글을 완성한다. 몇 년 간 맛집 취재를 담당하며 장소나 음식에 대해 굵고 짧은 원고 쓰기를 수 백 번 무한 반복하다 보니 무엇에 대한 묘사는 할 만한데 문맥을 맞춘 수미상관이 어려울 때가 있다.         




브런치를 추천한 후배 한 명이 있다. 그녀의 글을 보면 막힘없이 쉬이 문장이 읽히고 모든 글들이 스토리가 된다. 물론 그녀가 문예창작과 출신이라 이미 기본기가 되어 있기도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 꾸준하게 사적인 글을 쓰고 쓰고 계속 썼기 때문이리라. 그 결과 책도 출간해 엄연한 출간 작가가 되었다. 책을 내기 전 수많은 글쓰기 과정을 통해 나 홀로 글쓰기 수행을 거친 셈이다.        


주변에 글 잘 쓰는 글쟁이가 많다 보니 지난날, 나의 태생을 원망할 때도 가끔은 있었다. 괜히 생각 없이 행정학과를 가서 말이야, 중간에 휴학하고 남들 시험 준비할 때 여행으로 허기를 달래고 연애하고. 대학 생활에서 하고 싶던 낭만은 다 즐겨봤으나 졸업하고 잡지사에 들어가 글자와 관련된 문과 출신, 문예창작과 출신들의 기사를 보며 풍류를 즐긴 내 대학시절을 쓰라린 마음으로 뒤돌아 봐야 했다.     


그들의 글은 대부분 물 흐르듯 매끄럽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걸리는 부분 없이 글이 보기가 좋고 편안하다. 밥벌이를 하러 나오기 전 이미 4년간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건 회사 측에서도 큰 이득이다.   


물론 어문 계열이 아닌 사람들 중 훌륭한 기자나 작가도 많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는 경영학과 출신이다. <우리는 닮아가거나 사랑하겠지> 생선작가 김동영은 관광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들은 혼자서 남모르게 밤을 지새우며 더 많은 노력을 하고 더 많은 몰입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20대 후반, 문예창작과 출신 선배에게 배운 건 두 가지다. 인터뷰 전, 질문지를 작성할 때 기사 쓰기를 염두에 두고 질문지를 작성하라는 것. 그 선배의 조언 전에는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중구난방 질문지를 작성했다. 그렇게 해도 기사 쓰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몇 년간 그 방식을 고수했다. 그러다 그의 조언을 듣고 흐름에 맞춰 인터뷰 지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해보니 기사 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비단 기사쓰기 뿐만이 아닐테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어느 정도 틀을 만들어놓고 써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선배를 보며 남자도 섬세한 구석이 있구나,라고 느낀 건 한 가지 팁을 흘리듯 더 알려주면서다. 선배의 또 다른 조언은 나만의 DB를 구축하라는 것. 자기만의 데이터베이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라는 것이다. 잡지 기자는 한 달에 한번 또는 일주일에 한 번 기명기사가 나가는데 초고가 잘 포장이 되어 기사화되면 나갔나 보다, 하고 얼른 다음호를 준비하기 위해 또 다른 기사거리를 물색한다. 그러다 보면 본인이 무슨 글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나고 인터넷에 퍼다 날라진 글들이 자신이 썼던 글인지도 모른 체 그렇게 살게 된다.     


물론 기명기사가 나가기 전 자기 검열은 물론 동료에 의해, 선배들에 의해 수없이 고치고 고치고 고쳐지다 최종적으로 편집장 선에서 오케이가 나야 글이 기사로써 환골탈태를 한다. 거기서 끝. 내 손을 떠난 글은 내 이름을 달고 기사화가 되지만 이미 머릿속은 다음호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선배가 말한 나만의 DB 구축은 지난날 쌓아온 기사들을 흘려보내지 말고 분류해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보고 써먹을 수 있도록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라는 것이다. 데이터가 축적이 될수록 글쓰기가 편해진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내가 모신 첫 편집장님은 쌍둥이 엄마였다. 그녀는 기자들이 제출한 원고를 체크할 때 최대한 초고를 활용해 글을 수정해주었다. 인트로에 넣을 문장을 글 안에서 찾아 앞으로 끌어오고  약한 인트로는 단어 몇 개 바꿔 힘을 불어넣었다. 문맥에 안 맞는 문장은 빨간펜으로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초고에 대해 크게 뒤집어엎거나 다시 써와!,라고 큰소리 내지 않고도 기자들의 생 글을 기사화시키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분이었다.


“나는 기자 시절에 누군가 내 글에 손대는 걸 굉장히 자존심 상하게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후배인 우리의 글을 봐주면서 과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위로하듯 말을 꺼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후배들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도 글을 고쳐주는 능력 있고 멋진 상사였다. 그녀를 통해 배운 글쓰기 팁은 바로 편집의 힘이다.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글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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