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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l 01. 2020

원고 마감하는 날


“쥐고 있지 말고 얼른 손에서 털어라. 내일 출근할 때 내 책상 위에 너네들 글이 수북이 쌓여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말에 누군가 고개를 돌려 속삭이듯 말했다.    


“쥐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마감이 오면 쌍둥이 엄마 편집장은 늦어지는 기자들의 기사에 일단 한번 종이로 뽑아서 나에게 달라, 고 부드럽게 기사 독촉을 했다. 그녀는 항상 A4 용지로 기자들의 기사를 체크했다.     


글을 쥐고 있는 대신 종이로 출력해서 보게 되면 화면에서 볼 수 없던 오류들이 매직 아이처럼 눈에 들어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글을 체크해주는 방법은 노하우가 담겨있었다. 나도 가끔은 완성되지 않은 글을 종이로 뽑아 빨간펜을 들고 시원하게 편집하고 싶다. 그런데 알면서도 노트북에서 데스크톱으로 장소를 옮겨 인쇄기를 켜고 종이로 뽑는 일은 꽤 번거로운 일이다.       


잡지사마다 마감 풍경은 조금씩 다르다. 취재기자, 사진기자, 디자이너가 삼위일체 되어 같은 공간에 있는 최적의 환경이 있는가 하면 디자이너가 함께 있지 않고 다른 공간에 있는 경우도 있다. 쌍둥이 엄마 편집장과 함께 일하던 잡지사는 취재와 사진은 같이 있지만 디자인을 외주로 주고 있었다. 그곳은 잡지사에서 멀지 않은 충무로에 위치한 디자인 회사였는데 마감이 되면 편집장과 기자들은 몇 가지 채비를 갖추고 충무로로 향했다.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취재를 나가거나 각자의 책상에서 글만 쓰던 기자들은 디자인 회사의 커다랗고 동그란 책상에 사이좋게 둘러앉았다. 기사에 사진을 얹어 레이아웃 잡아 출력한 대지로 함께 교정을 보고 점심과 저녁을 먹으며 며칠을 동고동락한다. 그래서인지 그 시기는 회사에 있다는 느낌보다 학교 글쓰기 동아리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반복되는 대지 확인에 며칠 만에 눈 초점이 흐려지기도 하지만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잡지사가 아닌 충무로로 출근하는 마감 기간이 행복했던 이유는 내가 쓴 원고가 사진과 함께 예쁘게 기사화되는 과정을 목도하는 설렘과 함께 불 같은 발행인의 눈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있어서다. 발행인의 얼굴도 모르고 다니는 잡지사가 있는가 하면 이곳은 발행인과 일반 기자와의 밀접도가 꽤 높은 곳이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발’이었다. 발행인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애칭 같은 줄임말이 아닌 글자 그대로의 발. 오른발, 왼발 할 때 사용하는 그 발. 내가 입사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퇴사한 선배가 알려주었다. 그녀는 발행인의 별명에 대한 명확한 사전적 의미를 알려주며 홀연히 그곳을 떠났다.    

 

너무 뜨거워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 먼 그였지만 뚜렷한 장점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광고를 잘 끌어오고 광고비를 잘 받아오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의 영업실력으로 기자들이 먹고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너네 때 다니던 잡지사 중에는 월급 안 주고 부려먹는데도 있었어. 안 주는 게 아니라 못 주는 거지. 그래도 여기 발행인은 월급 안 밀리고 딱딱 주잖니.”    


 당시 편집장의 말을 듣고 그런 곳이 있을까, 했지만 이후   지나지 않아 다른 잡지사에서 경험해 보고야 말았다. 열정 페이도 아닌 무급 페이. 나도 겪고  동료도 겪고 번역가 친구도 겪어봤다. 지난하고 구차한 과정을  통해 결국 밀린 월급을 받기는 했지만 잡지, 출판업계의 슬픈 현실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발행인의 강도 높은 잔소리에 지쳐 쓰러져 가는 기자들을 위로해주던 마음 따뜻한 쌍둥이 엄마 편집장님 덕분에 모진 세월 울고 웃으며 버티지 않았나 싶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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