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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l 02. 2020

글쓰기의 화양연화


원고를 쓰다 보면 맞춤법이 헷갈리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잘못 선택했다가는 전혀 다른 의미가 탄생해 난감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채/-체, 매다/메다, 배다/베다 등. 기사 쓰기에 열을 올리는 중간에 매번 검색하기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옆에 있으면 국어사전처럼 척, 하고 알려주는 동료가 있었다. 민 기자와 나는 잡지사에 들어온 시기가 비슷하고 나이도 동갑이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오는 르네 젤위거 캐릭터와 닮은 구석이 많은 그녀는 국문학과 출신에 목소리가 낭랑하고 끼가 많은 다재다능한 친구다.         


“민, 이거 뭐지? 아에이야, 어에이야?”    

“‘매다’는 신발 끈을 묶어 매는 거고, ‘메다’는 가방을 메는 거야. 배다’는 냄새가 배는 거고, ‘베다’는 벼를 베는 거야.”    


아나운서 같은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똑 부러지게 의미를 전달해주는 그녀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잠깐이나마 리포터 활동을 하고 방송국 개그맨 시험도 봤단다. 넘치는 개그 실력으로 충분히 합격하고도 남았을 것 같지만 떨어져서 잡지사로 왔다고 고백했다.     


펜이나 종이 한 장이 떨어져도 그냥 줍는 법이 없던 그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헤친 후 허리에 굵은 웨이브를 깊게 넣고 야릇한 눈빛을 보내며 물건을 줍는다. 여자 기자들만 있는 잡지사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섹시한 몸짓을 하다 어느 순간 천연덕스럽게 이대근 성대모사로 마무리를 하는데 개그맨 시험에서 떨어진 이유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였다. 붕어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아이스크림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붕어의 입 부분만 조심스레 뜯어먹고 없어진 입 부분에 자기 입을 쏙 밀어 넣고는 눈을 똥그랗게 떠 능청스럽게 붕어 표정을 짓는다. 붕어와 한 몸이 된 그녀의 모습에 또 한번 웃음이 빵 터졌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말로 웃기던 몸으로 웃기던 얼굴 표정으로 웃기던, 어쨌든 웃음이 계속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폭풍 갔던 마감이 지나간 후 그녀와 이런저런 장난을 친 사진을 SNS에 올리면 나의 학교 친구들의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     


“민 기자님 한번 만나게 해 줘.”     

“다음 우리 모임에 꼭 모시고 와.”    

“술 한잔 하자!”

   

다양한 요청이 쇄도했다. 진짜 한번 같이 갈까, 하다 그녀 주변 사람들만 만나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미식가인 민 기자는 특히 맛집 기사를 척척 잘 써냈다. 그녀가 쓴 음식 기사를 보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올 것 같은 글솜씨를 자랑한다. 입이 짧은 나도 먹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글을 맛깔스럽게 적었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을 놓치지 않고 다채로운 단어들로 풀어낸다.


마감 시기가 다가오며 기사 압박에 시달리던 어느 날 그녀와 나는 눈이 맞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몇 블록 건너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맥주 한 캔씩 나눠 마시며 그녀는 찐 계란을, 난 소시지와 페어링해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마감의 압박을 알코올로 달랜 후 조용히 사무실로 돌아와 글쓰기 두려움을 내려놓고 시원하게 기사를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혼자 글을 쓰다 보면  시절이 그립다.  글쓰기의 화양연화가 그때였지 싶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원고를 쓴다는 . 답답하고 힘든 순간을 서로 토닥여주며 함께 극복하고 해쳐나갈  있는 힘이 생긴다. 프리랜서의 글쓰기는 장소와 사람에 구애받지 않아 자유롭긴 하지만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함께 마감을 했던  기자와  시절 그녀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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