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그녀가 몸담고 있는 방송국 근처 벤치에 앉아 진행되었다. 올림픽 중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터라 적당한 장소를 찾다 선택한 야외 공간이다. 마침 가을볕이 좋아 사진기자도 흔쾌히 오케이 했다.
“죄송해요~ 회의가 좀 길어졌어요.”
눈부시게 따사로운 햇살 아래 뮤트톤 연둣빛 옷을 입고 등장한 K 아나운서는 환한 미소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넨다.
“올림픽 중계 때문에 28일 정도 출장을 다녀왔어요. 솔직히 저 고생 많았어요~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 취재, 응원, 개인적인 반응도 카메라에 담아야 했는데 이 모든 걸 혼자 해야 했거든요.”
올림픽 취재 현장은 방송 기자단 취재 후, 신문 기자단 취재가 들어가는데 일반 방송 프로를 맡고 있던 그녀는 도둑 촬영을 해야 했다. 신문 기자단의 취재가 시작되면 카메라가 못 들어가게 되어있지만 방송을 위해 끝까지 파고들어 취재를 했단다. 덕분에 취재수첩으로 맞기도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처음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친구들이 놀라더라고요. 저 역시 아나운서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대학교 때 스피치 과목을 듣다 목소리가 트였다는 교수의 칭찬을 받고부터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나운서 시험을 보던 시기에 마침 방송국에서는 기존 전형적인 아나운서 이미지에서 벗어난 색다른 느낌의 아나운서를 뽑아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런 부분에서 그녀는 스타성을 지닌 적합한 아나운서였다.
“개인적으로는 전형적인 아나운서 스타일이 더 좋은데 색다르게 봐주시니 처음에는 속상했어요.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웃음)”
그녀와 나는 여고 동창 사이다. 고 3 때 바로 옆 반이었다. 그곳이 터가 좋은지 그 반에서만 지상파 아나운서가 2명이나 배출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 반은 ‘빙썅반’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반이었는데 입꼬리를 한껏 올린 빙그레한 얼굴로 감수성 예민한 소녀들에게 거침없는 말을 퍼부어대는 신기한 인격을 가진 담임이 있었다. 다행히 그 담임의 수업을 들을 일이 없었지만 워낙 악명 높고 바로 옆 반인지라 그녀 담임에 대한 괴담을 수도 없이 들으며 고3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저 반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야. 저 반 아이들 너무 불쌍해. 글쎄, 오늘은 저 반에서 이런 일이 있었데.”
우리 반 친구들과 나는 운 좋게 그 반이 아님에 대해 늘 하늘에 감사하며 측은지심으로 옆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고3 때 혹시 1반 맞죠?”
“아~ 맞아요! 빙썅 반이요.”
해맑게 웃으며 그녀가 답한다. 고상하고 우아한 입에서 착 붙는 찰진 단어가 나오니 더없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학교 동창이지만 같은 반을 한 적도 없고 딱히 친분도 없기에 사회인으로서 그저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며 예의를 갖춘 인터뷰 자리였다.
사회인 페르소나를 두른 점잖던 인터뷰 자리가 그녀 입을 타고 나온 ‘빙썅’이라는 단어로 한순간 여고 소녀들의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뒷 이야기 자리로 바뀌게 되었다. 오고 가는 추억 속에 비로소 그녀와 내가 진정한 동창이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오랜만에 방송을 보다 오래전 그녀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세월이 더해진 그녀의 편안한 진행은 한 프로그램을 오래 끌고 나가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는 TV 속 그녀를 보면서 ‘빙썅’ 담임의 거친 티칭 스타일이 훌륭한 사회인을 배출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