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댓글을 올릴 관상이냐, 아니냐

말과 글과 숨결이 지나간 흔적

by 아일린


김희애 주연의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를 두던 무료한 일상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드라마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TV 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러면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였고 드라마가 끝나면 다음 회는 어떤 내용으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려나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곤 했다.


김희애 언니가 ‘여우회’에 가입하고자 그들이 있는 사격장에 기다란 총자루를 들고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부부의 세계> 음악 감독의 탁월한 음악 선택 덕분에 그 장면은 더없이 비장한 분위기로 연출되었다. 거기에 여주인공의 와인빛 롱 가죽재킷과 무릎 위까지 쭉 하고 추켜올린 블랙 부츠가 살벌한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켰다. 그 장면이 나오던 그 횟수 차 인터넷 기사를 읽다 어떤 댓글을 보게 되었다.


“김희애 님 신발 영의정 신발 같다. 나는 왜 그 장면에서 영화 <관상>이 떠오르는 걸까. 내가 여우회에 들어갈 관상인지, 아닌지 말해 보거라. 다시 한번 묻겠다. 내가 여우회에 들어갈 관상이냐, 아니냐.”


그 댓글을 보고 글쓴이의 재치 있는 발상에 흠칫 놀랐다.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 역할을 맡은 이정재가 관상쟁이 송강호에게 “내가 왕이 될 관상이냐, 아니냐”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 주인공의 검은 부츠를 보고 사극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 패러디한 댓글. 여러 번 읽어도 큰 웃음을 선사하는 번뜩이는 위트가 눈길을 끈다. 요즘 기사 댓글을 보다 보면 기자보다 더 글 잘 쓰는 댓글러들이 은근히 많다. 수준 높은 댓글을 보면 댓글만 쓰고 있기에는 아까운 생각마저 든다.




인터넷 기사를 읽다 내용이 헷갈려 여러 번을 읽었던 기사가 있다. 맞춤법이 틀린 단어도 여럿 눈에 들어왔다. 나 또한 기사를 작성하다 산으로 가기도 하고 맞춤법이 잘못 나간 적도 있다. ‘명품’이 ‘명푼’으로 잘못 나간 기사가 있었다. 명품의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단어 받침 한 끗 차이로 없어 보이는 기사가 된 것이다. 그것도 글 중간이 아니라 제목에 떡, 하니 오타가 나가는 대형 사고를 치다니.


분명 여러 번 체크했음에도 그런 실수가 발생을 하더라. 인터넷 기사면 수정이라도 하면 되지만 이미 인쇄가 되어 나온 마당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도 내 글을 봐주지 않기를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마음 졸이며 한주를 보낸 기억이 난다. 때문에 오타나 글 방향이 갈피를 못 잡는 기사를 볼 때면 동병상련의 마음도 들고 이해도 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음. 적어도 맞춤법은 확인하고 올리기 바람.”


인터넷 기사의 뼈 있는 댓글을 보고 괜히 내가 뜨끔했다. 글 쓴 사람이 댓글을 보고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기사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을 해준 듯 싶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읽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댓글을 왜 쓰는지, 그걸 또 왜 보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가던 시절이 있었다. 냉철한 댓글을 읽고 나서부터 기사를 읽을 때 댓글까지 얹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댓글을 읽다 보면 공감이 가는 댓글도 많고 잔재미를 주는 댓글도 많다. 이곳 브런치만 해도 얼마나 마음 따뜻한 댓글이 많은가. 글을 읽다 훈훈해져 댓글을 보고는 더욱 깊은 공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어적 도구로서 댓글의 순기능을 엿보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발로 적었을 법 한 글을 손으로 적어 올린 댓글이 있다. 그런 댓글을 보면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악플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체감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댓글의 순기능보다 악영향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어느 날 책을 출간한 기자 후배가 악플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연예인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악플은 작가도 비껴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나 보다. 악플은 글이 아니라 배설이 아닌가 싶다. 배설은 화장실에 가서 하는 거지 불특정 다수가 보는 인터넷에 하는 것이 아니다. 입이 간지러워 말하지 않고는 못 살겠다 싶으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던지 하는 방법을 이용해 보길 권한다.




글이란 것은 휘발되어버리는 말과 달리 기록에 남는 것이다. 휘발되어버리는 말조차도 씨가 있는 법인데 글이라는 수단의 위엄성을 알아야 한다. 이기주 작가는 <말의 품격>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말과 글과 숨결이 지나간 흔적을. 그리고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는 건 아닌지를. 말이라는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고 뾰족한 무기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글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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