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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l 04. 2020

티타임과 글쓰기, 쓰다보니 셀프 위로

“부르부르, 틱”


뜨겁게 달아오른 전기포트가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며 자동으로 꺼진다. 7월 말에서 8월 초를 제외한 나머지 350일 정도의 날들은 냉장고에서 미니 정수기를 꺼내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파리나 뮌헨 같은 유럽 도시에서 살 기회가 있었다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갓 구운 풍미 깊은 빵을 사 오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을 텐데, 라는 아쉬운 생각도 가끔은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물을 끓이는 동안 그날 기분에 따라 크림색 빗살무늬 라테 잔에 마실지, 언니가 물려준 화려한 초록색 꽃무늬 커피잔에 티를 마실지 마음의 결정을 한 후 2초 정도 굵고 짧게 티를 고른다. 괌 여행에서 사재기해 온 디톡스 허브티를 다 마셨더니 선택의 폭이 줄었다. 구수한 유기농 루이보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상쾌한 블렌딩 민트, 친구에게 선물 받은 중국산 고급 재스민 등. 생각해보니 2초가 아니라 20초 정도 고민하게 되나 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캐모마일로 결정했다. 캐모마일 티백 위로 뜨거운 물을 부으니 노란빛의 물줄기가 물감 퍼지듯 은은하게 퍼져 나간다.


커피가 내 몸과 잘 맞았다면 조지 클루니가 광고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에 톡, 하고 캡슐을 넣어 미끈하게 잘 뽑아 내린 커피 크레마를 감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 기억에 커피의 구수하고 깊은 향은 풍요로운 기분을 선사하기에 충분하지만 몸이 영 거부를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수십 년째 내 몸을 사용해온 결과 아마도 카페인에 좀 취약한 것으로 사료될 뿐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홍차를 진하게 우려 마실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커피만큼 속이 울렁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잠을 뒤척거린 날이면 늦은 오후에 홍차나 얼그레이 밀크티,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밀크티를 마신 날이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커피와 홍차가 주는 설렘과 기분전환에도 불구하고 그네들 앞에서는 조심조심 주저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꽤 까다로운 여자라는 불편한 시선을 보낼 때도 있다.




캐모마일 티가 어느 정도 우러날 때까지 눈 깜짝할 새 마무리할 수 있는 집안일 하나를 한다. 전날 남은 설거지를 하던지, 빨래를 갠다던지. 그렇게 10분 정도 우리고 식히면 알맞은 온도의 티와 조우하게 된다. 뜨겁고 따뜻한 온도의 중간 어디 즘의 적당한 온도가 예민한 내 몸과 궁합이 잘 맞는다.


편안함의 상징인 캐모마일 한 모금은 차분하게 마음을 잡아주는데 여기에 맑은 피아노 선율의 클래식까지 더하면 굳이 카페로 나가지 않아도 그에 준하는 평화로운 분위기의 라곰과 휘게를 만날 수 있다. 몇 년 전 한창 키워드로 떠오른 북유럽 스타일 문화코드인 라곰과 휘게는 티타임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단어다. 적당한 온도의 티와 적당한 음악이 흐르는 딱 라곰 같은 시간이다.


사실, 나만의 글쓰기가 벅차고 힘겨울 때가 있다. 기사 쓰기보다 훨씬 수월하고 재밌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사 쓰기가 더 쉽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와의 대화에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추억에 빠지고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반대로 굳이 들추고 싶지 않던 묻어둔 낡은 감정을 꺼내게 되는 순간이 있더라. 그럴 때면 이걸 왜 하고 있지, 싶다. 직업병인지 마음 한구석에 예쁜 것만 예쁘게 쓰고 싶은 욕구가 여전히 존재하나보다.


좋은 건 좋다고 표현하는데 기분이 안 좋거나 하면 입을 닫아버리는 습관 탓이기도 하다. 부딪치는 데에 쓰이는 에너지가 나를 갉아먹어버리는 느낌이 괴로워 아예 자기 방어 모드로 들어가는 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한 템포 쉬고 찻잔을 들어본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다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아름다운 추억도 지우고 싶은 과거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인 것을, 크게 괘념치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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